◎유죄땐 ‘거수기’ 불구 거액변제책임「연말휴가를 제주도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던 중견기업 김모 이사는 조간신문을 보고 기겁을 했다. 신문에 자신의 회사 주주들이 모든 이사진을 대상으로 1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보도된 것이다. 소액주주들이 자신의 회사가 갖고 있던 자회사의 주식을 대주주에게 저가로 양도한데 대해 법원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 그로부터 1년후 김이사는 다른 이사들과 함께 유죄판결을 받고 손해배상의 부담을 안은채 퇴사했다. 자신은 이사회에서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의 이사회가 자신의 인생을 망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시나리오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기업체 임원진을 대상으로 한 주주들의 손해배상소송이 잇따르면서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 한화종합금융과 의류제조업체인 D사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한화종금의 창업주주인 박의송 우풍상호신용금고 회장측은 한화종금이 자사소유의 서울 소공동 소재 부동산을 저가로 매도한 것을 근거로 그 결정에 참여하였던 한화종금의 이사들에 대하여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부동산매각결정 이사회에 참여한 임원들은 손해배상금청구액이 400여억원에 달해 법원판결 여부에 따라서는 자칫 감당할 수 없는 금전적 부담을 안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같은 「주주의 반란」은 상법에 규정되어 있는 주주대표소송에 근거한 것이다. 상법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판단에 대해 회장이나 사장뿐만 아니라 그 결정에 참여한 이사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토록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주주대표소송이 매년 수백건에 이르고 있고 일본에서도 현재 200여건이 법원에 계류중이다. 주총꾼에게 거액의 자금을 건넨 타카시마야백화점, 선물시장에서의 구리거래로 거액의 손실을 낸 스미토모상사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위험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기업체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오너체제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경영현실에서는 대부분 기업의 이사회가 오너의 결정을 추인하는 거수기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주대표소송제가 활성화할 경우 이런 관행은 상당히 변할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 오너에 대한 견제역할을 하게 된다면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어 투자자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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