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꾼이 쓴 ‘반도체 개발 뒷면’/신기술 싸고 한·일 갈등/전두환씨 등 실명 등장/허구와 사실 아귀맞춤김홍신(49)은 영락없는 이야기꾼이다.
민주당 전국구로 15대 국회의원이 됐는가 했더니, 올 국정감사에서는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각 언론에서 뽑는 소위 국감활동 베스트 의원 명단에 빠진 적이 없다. 80년대초 「장총찬」을 등장시킨 「인간시장」(전 20권)으로 당시까지만 해도 「훈민정음 창제 이래 가장 많은」 책을 팔아치우며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소설가. 그가 정치판에서도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4년만에 다시 펜을 잡고 이야기꾼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편소설을 썼다. 해냄 출판사가 이번주 중 출간하는 「칼날 위의 전쟁」(전 2권).
「인간시장」과 마찬가지로 소설의 배경은 5공이다. 「현대 과학의 쌀」이라는 반도체 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국과 일본의 갈등, 한국 기업간의 경쟁을 다룬 작품. 김홍신다운 취향과 소재 선택이다. 스스로 「인간시장」을 두고 『문학성은 없을 지 몰라도 80년대 사회사를 정리하는데는 가장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한 것처럼, 이번 소설도 문학적 평가와는 한편으로 우선 화제가 될 법하다. 소설에는 전두환 노태우 양 김씨는 물론 오명 전 장관, 강진구 삼성전자 회장, 반도체 개발전문가 홍성원 이진효 박사 등 실제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사실과 허구가 아귀맞춰져 있다. 5공 정권과 S그룹 회장은 반도체를 개발하기로 합의하고 엄청난 투자를 한다. 미국 등 해외에 있던 세계적 석학들이 속속 국내로 들어오고 연구소가 설립되며 국가의 역량도 총동원된다. 그러나 한국의 반도체 개발을 저지하려는 일본의 방해가 시작되면서 과학자들이 납치, 살해되고 한국의 정보기관들과 일본 우익·야쿠자의 대결이 벌어진다. 한 PD가 실종된 과학자 형님을 찾는 과정에서 이러한 반도체 개발의 전모가 드러난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 흥미있는 내용과 함께 정치권의 이면 이야기 등 사실적 정보 제공도 눈길을 끈다.
작가 김씨는 『두 눈 뜨고 지켜본 현대사에서 내가 가장 냉혹하게 비판할 수 밖에 없는 전두환씨에게도 반도체 개발 성공 부분에 대해서만은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독일도 소련도 포기한 반도체 개발을 한국이 성공시킨 것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한 것』이며 『반도체 강국인 미국과 일본이 권총과 일본도를 휘둘러 대는 형국에, 한국이 맨발로 날이 선 작두날 위에서 무딘 부엌칼을 들고 싸운 불공정한 「칼날 위의 전쟁」이 반도체 개발이었으나 끝내 「한국인은 이겼다」』는 것. 이것이 이번 소설 쓰기의 단초가 됐다. 그는 『여러 해 산지사방을 돌아다니며 관련자와 전문가들을 만나 취재했다』며 『소설적으로 구성하고 쓰는 데 1년이 걸렸지만 행여 사실이 잘못 전달되거나 실존 인물에 누를 끼칠까 해서 교정작업에도 넉달여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74권의 저서를 가진 김씨는 92년 장편 「사랑의 장난」을 낸 이후로는 문학박사 학위 취득, 방송 활동, 국회 진출 등 『작가는 사회적 활동의 폭을 넓혀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소신대로 문학 외적 활동에 더 주력해왔다. 하지만 누에가 뽕잎을 먹고 살듯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그가 다시 『나는 영원히 작가이고 싶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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