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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의 강탈/보테로(작품속의 여인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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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의 강탈/보테로(작품속의 여인들:7)

입력
1996.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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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는 포이닉스의 딸, 혹은 페니키아왕 아게노르의 딸로 빼어난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이번에도 이 아리따운 처녀를 가만두지 못했다. 헤라를 범할 때 뻐꾸기로, 레다를 범할 때 백조로, 다나에를 범할 때 황금빛 빗줄기로 변했던 제우스는 흰 소로 변해 유로파에 접근, 크레타 섬으로 납치했다. 그녀가 낳은 자식들은 크레타 왕과 키클라데스 제도의 왕이 됐고, 크레타에서는 그녀를 「헬로티스」라는 이름으로 숭배했다.제우스의 성적 정복의 대상이었던 유로파는 원치 않는 섹스의 희생물. 하지만 자신의 그림 세상에서 세상의 질서를 뒤집기를 좋아한 콜롬비아 조각가 페르난도 보테로(64)는 유로파의 처지도 뒤바꾸었다.

실제 사회에서 여성은 늘 피억압자이지만 적어도 그의 작품 속에서 여성들은 자존적 존재다. 황소 등에 실려 납치되는 유로파의 모습은 오히려 황소를 부리며 즐거운 길을 떠나는 사람 같다. 반면 황소는 「신중의 신」 제우스가 변한 모습이라고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양순한 동물로 묘사됐다.

실제 지배자를 피지배자적 위치로 전락시키고, 희생자를 유쾌한 지배자로 역전시키는 보테로적 풍자와 위트는 남미 문화의 특성과 그의 독특한 세상 보기 방식이 결합돼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바람이 잔뜩 든 것 같은 조형은 「보테로몰프」(Boteromorph)라는 고유 명칭까지 부여받았다. 서양회화에서 유구하게 추구해온 「입체감」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보테로가 고전주의적 미술가치에 능통함을 지나 그것을 객관화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볼이 터질 것 같은 「모나리자」, 나폴레옹을 패러디한 것 같은 우스꽝스런 정복자의 모습인 「스페인 정복자의 자화상」은 한결같이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공통점이다. 정복자와 신화 속의 인물에 대한 냉정하고도 현실적인 인식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 묘사로 더욱 기묘한 정서를 불러 일으킨다.

10대 때 이미 콜롬비아 정권의 민중 살육 사건인 「라 비오렌시아」를 겪은 보테로에게 사회의식의 반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로파의 강탈」이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의 발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노장 보테로의 세상과 희망에 관한 생각을 대변한다. 315㎝×211㎝×183㎝, 작가 소장. 92년작. 브론즈.<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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