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부터 읽어도 괜찮고/튀는 디자인 보는 재미까지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 중간부터 읽어도 괜찮고, 읽는 것만큼 보는 재미도 있는 책.
출판계에 「작은 책」 붐이 일고 있다. 기존의 신국판 형보다 훨씬 작은 판형에 간결한 내용, 그리고 튀는 디자인으로 눈길을 잡아 끄는 책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삼성출판사는 최근 손바닥만한 크기의 「100과 사전 시리즈」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혼자 사는 남자(여자)를 위한 100과 사전」, 「남자를 배우는 100과 사전」, 「오래 기억되는 선물 100과 사전」 등. 한꺼번에 8권이 출간된 이 시리즈물은 입에 오르내린 만큼 판매도 호조다.
도서출판 모아에서 낸 5권짜리 시리즈물은 메모용지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 문학과 지성사의 「문지 스펙트럼」 등 90년대 들어 일기 시작한 책의 슬림화 경향은 이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기획단계에서부터 팬시용품처럼 지니고 다니거나 선물용으로 쓸 수 있게끔 만든 이른바 「기프트 북(gift book)」까지 선보이고 있다.
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런 경향은 무엇보다 만성적 출판불황 타개책이라는 측면과 함께, 영상시대 독자들의 달라진 취향에 부응하려는 출판계의 적극적 몸짓이다.
현실문화연구 편집장 손동수씨는 『사람들은 점점 보는 문화, 이미지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책까지도 읽는 것이 아니라 「보기」를 원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사고의 속도 또한 점점 더 호흡이 가빠지는 현대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를 쫓아가는 식의 책읽기를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내용과 편집을 고집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더러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는 것.
그러나 이같은 출판의 팬시화에 대한 비판론 또한 만만치 않다. 『급변하는 문화상황 속에서 책의 전통적 모습이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책의 판형, 내용, 형식의 파괴가 알맹이 없는 출판상업주의의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89년 이후 「빛깔있는 책」시리즈를 185권째 내놓고 있는 대원사 편집장 조은정씨의 말이다.
여하튼 이같은 책의 슬림화·시각화 경향은 출판시장의 다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책의 최소한의 존재 이유를 깨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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