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상탁하부정」이란 말이 있어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다고들 한다. 현정부에 들어서 대통령이 공사생활에 솔선하여 청교도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공직사회를 위시하여 부패문제는 여전히 국민의 큰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하여 왔지만 공직부패가 지상을 장식할 때마다 사정책임자로서 한탄과 자책을 느낀다.이러한 공직부패사건들을 다루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의 공직부패는 시민생활과 접해 있어 비리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즉 공직부패를 근원적으로 청산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안목에서 전근대적이고 굴절된 생활문화의 폐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의식개혁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잘못된 생활문화로서 공직부패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평소에 느끼는 점 몇가지를 열거해 보기로 한다.
먼저 과도한 관혼상제의 행사를 들 수 있다. 지금도 「동네사람 모두 부르기」식의 전원사회적 미풍양속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이다. 과도한 관혼상제를 치르기 위해서는 봉급이 뻔한 공직자들로서는 부패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나아가 간소화하지 않는 관혼상제는 명목은 부조, 실질은 뇌물적인 것을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기회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
둘째로 빈번한 회식문화를 들 수 있다. 공직사회에서 윗사람은 열심히 일한 아랫사람을 격려한다는 뜻에서 회식을 베풀곤 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유례없는 회식의 성행은 개인주머니의 한계 때문에 변칙적인 예산의 전용으로 공금유용을 조장하거나 유관업체에 의한 경비조달 등 고질적인 상납비리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공과 사의 혼동된 의식구조를 들 수 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 직분인데도 인허가 처리를 마치 민원인에게 사적 시혜를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가를 기대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심지어 직원의 승진 등 인사상 우대조치를 기관장으로서의 부하직원에 대한 은전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의 선심성 예산 집행실태를 감사하고 있지만 아직도 예산을 사적인 접대비나 집안일 등에 유용하는 경우가 더러 발견되고 있다.
넷째로 자녀의 과보호에 따른 과외수업을 들 수 있다. 얼마전 부정방지대책위원회에서 실태조사한 바도 있지만, 사교육비의 엄청난 가계부담은 공직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과외는 분명히 적자 가계의 가중요인인 동시에 공무원들로 하여금 부패의 늪에 쉽게 빠져 들게 하는 원인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섯째로 공무상 투명성 문제를 들 수 있다. 즉 행정절차는 간단 투명하여 민원인이라면 누구나 정해진 적격요건을 갖추면 적시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하겠다. 영수증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법정장부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공·사금을 혼합계리하는 사례도 나타나는데 이러한 회계의 불투명은 흔히 부패의 소지를 제공하기 쉬운 것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우리의 졸속·적당주의 문화 역시 공직부패와 무관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 어려운 여건하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구하여 왔고 그러한 과정에서 매사를 속전속결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성수대교를 비롯한 각종 부실공사가 그 결과이고 수출되는 제품의 하자발생도 이에 기인하는 바 크다. 나아가 부실·불량이 뇌물을 낳는 등 부패의 고리를 더욱 깊게 하게 된다.
이러한 오도된 생활문화의 폐습에 대한 청산 없이는 공직사회의 구조적 부패는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 절감하는 것은 감사를 통하여 의식의 전환이 이뤄지고 건전한 생활문화가 정착되도록 하여야 겠다는 신념이다. 그것이 부패의 거품만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거품의 원천을 들어내는 발본책일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