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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이 본 이문구 ‘관촌수필’(다시 읽는 한국문학: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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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이 본 이문구 ‘관촌수필’(다시 읽는 한국문학:6)

입력
1996.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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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스레 문학공부하던 시절/처음 본 구어체 문장/이렇게 쓰고도 글이 되다니…/게다가 코끝 찡한 내용까지1978년, 그때 나는 대학 2학년생이었다. 1학년 때 얼마나 줄기차게 놀았는지 나온 학점보다 나오지 않은 학점이 더 많았다. 만약 그때 졸업정원제 같은 것을 실시했다면 나는 어김없이 학교에서 잘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하나도 걱정이 돼지 않았을까.

에라, 이왕 이렇게 된 것, 잘 맞지도 않는 경영학 공부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소설 공부나 본격적으로 하자. 내게 이런 결심을 앞당겨 준 것도 그런 학점 덕분인지 모른다. 대학 2학년 때 나는 본격적으로 문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사사할 선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는 것도 미련스럽게 놀았지만 문학공부도 조금은 미련스럽게 했다. 스스로의 생각에 한국 현대문학의 고전이라 생각되는 중·단편들을 내 작품인 양 원고지 위에 베껴 써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문장이며 구성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만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국문학과에 다니는 옆방 친구가 사 들고 온 어떤 문예지에서 나는 처음 「우리 동네 리씨」라는 제목의 이문구 소설을 읽었다.

햐, 이것 봐라. 이제까지 내가 필사해 오던 작품들의 교과서 같은 문장과는 전혀 다른 문장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소설에서 대사는 그렇게 써도 되지만 지문에까지 시골 촌부가 줄줄이 말하듯 사투리를 섞어 그렇게 쓰면 안되는 줄 알고 있었다.

하기야 당시 대학 2학년생인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무렵 어떤 문학상 심사평에 이름만 대면 대번에 알만한 어떤 원로문인(그의 작품 역시 나는 필사를 했었다)까지 그의 그런 문장에 대해 트집을 잡을 정도였으니 이제까지 그런 문장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는 셈이었다. 구어투라도 보통 구어투의 문장이 아니었다. 이렇게 쓰고도 말이 된다는 게 놀라웠고, 그렇게 쓴 글이기에 읽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는데 놀랐다. 「우리 동네…」시리즈보다 먼저 나온 「관촌수필」도 아마 그래서 찾아 읽었을 것이다.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 전의 이야기인데도 지금도 나는 「관촌수필」의 다섯번 째 이야기 「공산토월」을 읽던 날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죽음을 앞둔 석공이 병원에서 나와 고향으로 가는 대목, 그때까지도 나는 용케 흐르려 하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주인공인 화자에게 움직여지지 않는 손으로 악수를 청하고, 『나는 울었다』는 문장으로 그 소설이 끝날 때 나도 이제까지 참았던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울었다.

물론 후에도 코끝이 찡해지며 본 소설은 많다. 그러나 이제까지 소설 속에서 누가 울었다는 말에 함께 코끝이 찡해져 눈물을 흘렸던 적은 없다.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에 대한 하염없는 그리움이 바람에 스미고 달빛에 녹듯 스물 두살 문학청년의 가슴에 한없이 그렇게 녹아 흘러내렸다.

감동에서도 그렇지만 이제 막 소설 공부를 하는 문청에게 「관촌수필」은 소설 문장에선 따로 정해진 모범답안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또 하나의 큰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내 문체의 전방위성도 바로 그때의 배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다시 그 책을 읽고 싶다. 아직도 그 밤처럼 코끝이 찡하도록 울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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