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씨 일가의 탈북과 대한민국 이주를 보면서 나는 반가움과 더불어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국가 역할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국가, 구체적으로 정부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국민 보호이다. 특히 극한 상황에 처한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정통성, 곧 국민의 지지를 받는 국가 유지에 필수적이다.김경호씨 일가가 사선을 넘나들며 40여일간 중국대륙을 헤맨 끝에 홍콩으로 밀입국하기까지 우리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만일 전혀 몰랐거나 지켜보는 정도에 그쳤다면 그 무력함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고, 적극 개입하여 총지휘를 하였다면 여타 탈북주민의 경우엔 왜 이러한 적극성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이번 대탈출극 역시 선전효과를 노린 선별수용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정부에 대한 의구심과 실망은 더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제3국에서 사실상 무국적 상태로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떠돌고 있는 탈북주민의 숫자는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1,500명을 상회한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없다. 정부는 여러가지 난점을 들어 희망자 전원수용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고 현지 보호에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만일 탈북주민을 진정한 국민으로 끌어안으려 한다면 현지보호와 수용에 좀 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특히 현지 정부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 동유럽으로 동독인의 대량탈출이 벌어졌을 때 서독정부가 보인 열의를 우리 정부도 배워야 한다.
최근 국회 심의를 마친 「북한 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담긴 남한 이주 이후의 정착 지원정책 역시 문제점이 없지 않다. 이번 법안 가운데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인도주의 원칙을 천명한 것과 500여명 수용규모의 정착 지원시설을 설치하기로 한 것, 그리고 사회적응과 직업 교육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인도주의 원칙 천명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지금처럼 현지보호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거나 선별수용을 계속한다면 그 의미는 크게 퇴색할 수 밖에 없다. 정착지원시설 역시 통일원이 계획하고 있듯이 제대로 된 시설물을 3개년이란 장기계획으로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신속하게 설치할 수 있고 증설이 용이하며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유엔 난민촌 같은 임시주거 형태를 생각해야 한다. 정착지원과 관련한 가장 핵심 영역인 사회적응과 직업교육의 경우엔 통일 이후 남북한 사회통합을 염두에 둔 교육 프로그램을 조속히 개발하여 시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무부서의 재조정도 계속 검토해야 한다.
지금 절실한 것은 대량 탈북시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큰 손질없이 활용할 수 있는 정착지원체제이다. 대규모 탈북을 예상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에서 이런 점들의 마련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 수립은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국회입법조사분석실 담당관>국회입법조사분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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