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분야/우리시대 대표한 기존글 추려모아출판 문화는 한 사회의 지적 역량을 보여주는 거울일 수 있다. 출판이란 것이 이제 단지 문화의 한 장르 정도로 치부되는 시대라 하더라도 지식인들을 포함한 한 사회의 성원들이 써 내는 한 편의 글, 한 권의 책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그 역량이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한길사(사장 김언호)가 이달로 창사 20주년을 맞아 펴 낸 세 권의 두툼한 책 「역사와 지성」, 「사람과 사상」, 「명저의 세계」는 그래서 우리 시대의 한 지적 초상이라 해도 크게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더 연륜 있고, 더 좋은 책을, 더 많이 펴낸 출판사도 있겠지만 인문·사회과학 서적 전문 출판사로서의 한길사 20년은 분명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케 하는 한 계기가 된다.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인가. 76년에서 96년. 분단이라는 근본적 조건 하의 군사통치,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경제·사회적 욕구의 분출과 이를 억누르는 체제의 갈등, 인간적 삶의 실현을 위한 노력의 좌절과 성취, 문화적·이념적 실험과 실천… 바로 현재도 진행형인 우리 삶의 모습들이다. 70년대 중반 이후 대학에 들어가면서 한길사가 펴 낸 「해전사」(해방 전후사의 인식)를 읽었던 그 세대는 이제 우리 사회 각계의 중간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번에 묶인 세 권의 책 편집위원인 김재용(연세대·국문학) 윤형식(경희대·철학) 이삼성(한림대·정치학) 한정숙(서울대·서양사학) 교수들도 거기 속하는 소장 학자들. 김언호 사장은 『한길사가 펴 낸 1,200권의 책들은 격동하는 역사과정에 대한 우리 지성사의 궤적』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크라운판으로 각각 800쪽에 달하는 세 권의 책에 실린 글들은 「오늘의 사상신서」, 「한국사회연구」, 「한길그레이트북스」 등 기존 한길사의 단행본과 잡지 등에 발표됐던 글들 중에서 추려 모은 것.
「역사와 지성」에는 함석헌의 「우리 민족의 이상」에서 최병두의 「자원 이용과 생태환경의 위기」까지 32편, 「사람과 사상」에는 남명 조식 선생에서 종속이론가 사미르 아민 등을 다룬 30편, 「명저의 세계」에는 안토니 기든스의 「마르크스·베버·뒤르켕의 지적 상호관계」에서 라다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를 다룬 29편의 글이 모였다.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이 먼저 눈에 띄지만 우리 사회 지식인들의 중요한 문화 생산물임은 분명하다. 『이 글들은 물론 지난 시기의 정신적·사상적 지향이었지만, 세기말을 보내면서 새로운 세기를 맞는 역사적 대전환기에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여전히 타당한 정신과 사상의 논리적 전개』라는 게 한길사측의 말이다.
한편 김언호 사장은 『이제까지가 「사회과학」의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문명」이 출판문화의 화두가 될 것』이라며 저간의 시오노 나나미 바람으로 대표되는 한길사의 새로운 모색의 방향을 내비쳤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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