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7번째 사무총장으로 안보리가 추천한 코피 아난(58)은 유엔 전문관료출신으로는 유엔의 수장에 오른 최초 인물이다. 62년 유엔에 들어온 이래 34년간 뉴욕 본부는 물론 제네바 등 전세계 각국의 유엔 임지를 두루 거쳤다. 실무 행정능력으로 따진다면 역대 사무총장중 가장 탄탄한 경력을 구비했다고 할 수 있다. 검은 정장 차림에 부드러운 말투, 항상 자세를 낮추는 특유의 처신이 실무형 사무총장의 이미지를 더한다. 미국 MIT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미국통이기도 하다.그는 최근 한달여간 유엔을 휘몰아친 정치소용돌이의 부산물이다. 지난달 9일 미국이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현 총장에 대해 단독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총장선출을 둘러싼 진통이 시작됐다. 이후에는 프랑스가 아난에 대해 6차례나 거부권을 던지면서 미·불간 「외교대결」의 양상마저 띠었다. 유엔외교가에서 이를 「거부권 전쟁」이라고 불렀다. 아난의 프랑스어가 부족하다는 것도 프랑스가 그를 반대한 이유이긴 했으나 자신이 지지하는 부트로스 갈리를 미국이 단칼에 날리는 상황을 그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심리가 더 짙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난의 총장추천이 유엔을 무대로 미국과 프랑스가 벌인 힘겨루기에서 미국이 한판승을 거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스는 아마라 에시 코트디부와르 외무장관을 밀었으나 6차례 계속된 표결에서 에시 장관은 15개 안보리 회원국중 7개국의 지지를 넘어본 적이 없었다. 반면 아난은 첫날 11표 득표에서 시작, 12일의 마지막 표결에서는 프랑스를 제외한 14개 회원국 전원의 지지를 얻었다. 마지막 표결에서는 부트로스 갈리 출신국인 이집트마저 미국이 미는 아난쪽으로 돌아섰다. 결국 프랑스는 고립상태에서 거부권을 철회해야 했다. 프랑스는 대신 아난외의 다른 세 후보들이 차기 유엔고위직에 기용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아난 신임총장은 기구축소 재정난해소등 개혁이 중심과제로 떠오른 21세기의 유엔을 끌어가야 한다. 걸프전때 이라크에 억류된 서방인질 구출에 능란한 수완을 발휘했던 그이지만 『21세기 유엔에 부적합하다』는 미국의 이유로 연임이 좌절된 부트로스 갈리를 얼마나 대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동안 부트로스 갈리에게 공을 많이 들였던 한국으로서는 이제 새로운 사무총장을 사귀어야 할 형편이다.<뉴욕=조재용 특파원>뉴욕=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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