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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의 76년 인생/이문학회장 노촌 이구영씨(선데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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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의 76년 인생/이문학회장 노촌 이구영씨(선데이 스토리)

입력
1996.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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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남파간첩→22년 옥살이→전향 재야국학자/이념때문에 버렸던 아내·딸 늘그막에 함께/감옥서 한문집 두루 독파 “월사집 완역 눈앞”간첩혐의로 구속된 뒤 전향을 거부하며 22년동안 옥살이했던 재야국학자가 필생의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뒷골목의 건국빌딩 2층 이문학회에서 회장 노촌 이구영(76)씨는 자신의 12대조이며 조선시대 4대가중 하나인 월사 이정구의 문집 「월사집」(전 72권) 국역에 몰두하고 있다. 3년여의 노력은 내년 상반기면 결실을 보게 된다.

인조때 좌의정까지 지냈던 월사가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대중국외교를 상세히 서술한 문집은 이번에 처음 국역된다.

이문학회에는 대학교수와 시인 신경림, 「흰옷 이야기」의 작가 채길순 최인석씨 등 문인과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초서와 한학을 배우고 자문하려는 사람들이다. 이씨는 대전교도소에서 옥살이 할 때 통혁당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와 심지연 경남대 교수에게 벗삼아 제자 삼아 한학을 가르친 일이 있을 만큼 한학에 조예가 깊다. 고향 충북 제천에서 의암 유인석 선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던 아버지 주승(45년 작고)씨의 뜻에 따라 일제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성균관박사를 지낸 인척 신응균 선생으로부터 18세까지 한학을 배웠다. 감옥에서도 집안에 지천인 한문집을 하나하나 들여와 독파했고 수백점의 의병문집을 섭렵했다.

그의 삶에는 분단과 이념의 상처가 깊다. 58년 6월 평안도 동신군도서관장으로 근무할 때 『학원가에 침투하라』는 밀명을 받고 남파됐으나 같은 해 9월 부산에서 체포됐다. 그는 경희대 의대 전신인 동양의학전문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좌익활동에 휩쓸렸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두 딸과 아내를 남겨 두고 북한으로 넘어갔었다.

『한 번 먹은 마음을 어떻게 고칠 수 있겠느냐』며 한사코 전향을 거부해온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은 80년. 전신쇠약증에 걸린데다 중소이념분쟁을 지켜보면서 「절대적 이념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몸이 좀 나아진 87년 「국학의 전도사」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이문학회를 차렸다. 그 해에 군사사문헌 4백여책을 육사박물관에, 조선시대 문집 1백여점을 연세대박물관에 기증했다. 93년엔 선친이 물려준 사료를 중심으로 한말 의병활동을 정리한 「호서의병사적」을 편역했다. 서대문구 홍제동의 둘째딸 연훈씨 집에서 부인 김필한(78)씨와 함께 사는 이씨의 희망은 통일된 나라에 사는 것이다.<서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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