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아름다운 시어/고교시절 충격적 첫 만남/고독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순백의 시혼엔 경외감 마저고교 2학년이던 57년 시를 통해 윤동주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때까지 윤동주는 널리 알려진 시인이 아니었기에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따라서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편견없이 순수하게 그를 접할 수 있었다. 윤시인의 55년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순백의 시혼에 전율했다. 온국민의 애송시가 된 「서시」를 비롯해 「자화상」 「참회록」 「소년」 등 보석같은 시편을 읽으며 가슴 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별헤는 밤」도 그 중의 하나이다.
정지용은 윤동주가 「무시무시한 고독속에 살았던」, 「뼈가 강했던 사람」이며 그의 시는 슬프도록 아름답다고 했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내가 윤동주와 그의 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순수한 시혼 때문이다. 시어에서 정말 때묻지 않은 영혼을 읽어낼 수 있다. 두번째로 내가 그를 좋아하고, 또 아파하는 것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얼싸안았던 처절한 고독과 고뇌이다. 시 편편에 나타나는 「부끄러움」 「슬픈 가을」 「무덤」 「죽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뿐만아니라 순절에 이르는 윤동주의 애국혼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갖게 한다. 「새벽」 「부활」 「봄」에 대한 확신있는 기다림, 그리고 투신이 윤동주시의 결론이다.
「별헤는 밤」은 슬프고 아름답다. 윤동주는 자신이 그리워하는 세계의 사물들을 향수어린 음율로 별에 비유한다. 고향을 상실한 자의 고독과 그리움이 북간도에 계신 어머님에 이를 때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슬픈 식민지 지식인인 「부끄러운 이름」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끝내는 「봄」에 대한 그의 확신을 노래한다. 나는 이 시를 암송하며 자주 울먹였다. 무엇보다 양처럼 순하디 순한 윤동주의 혼속에 잠겨 있는 「강한 뼈」를 존경한다.
대학의 어느 강의시간에 장덕순 교수님은 좋아하는 시 한편씩을 외워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별헤는 밤」을 열심히 암송해 갔더니 교수님이 무척이나 기뻐하시면서 시를 아는 사람이라고 과찬하신 기억이 새롭다.
장교수님이 북간도에서 윤동주와 함께 자랐고, 연희전문에서도 깊은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나는 젊은 시절 모임에서 노래할 기회가 있으면 대신 시를 암송했는데 그때 18번이 「별헤는 밤」이었다. 분위기 깬다는 핀잔도 받았지만, 이 시의 음율이 뛰어나서 기대이상의 효과를 보기도 했다. 71년 외국에서 돌아와 연세대를 찾아갔다가 옛 연전기숙사였던 핀슨홀 바로 앞에 좋은 터를 잡은 조촐한 모습의 「윤동주 시비」를 발견하고 나는 기뻐서 탄성을 올렸다. 참배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자주 찾는다. 그는 나에게 영원한 동주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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