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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미­지성의 미/김영현 소설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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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미­지성의 미/김영현 소설가(1000자 춘추)

입력
1996.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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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부터 엉성하던 머리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휑해져 간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을 보다가도 발모제나 가발 광고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한번 더 끌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광고의 문안대로라면 세상에 대머리는 하나도 없을 터인데 그게 그렇지 않은 걸 보면 그런 약들이 별로 신통치는 않은 모양이다.대머리 치료법도 가지가지여서 하루에 머리를 천번씩 두드려라, 빗으로 피가 나도록 빗어라, 생콩을 먹어라, 지렁이즙을 먹어라, 다시마를 먹어라 등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하긴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머리까지 휑해지고 보면 마음이 썰렁해지게 마련일 것이다.

이 썰렁한 마음을 파고드는 일부 몰지각한 장사꾼들의 상혼은 더욱 우리 대머리들을 울리는 것이니, 매일처럼 쏟아져 나오는 광고문안을 보면 은연 중에 대머리가 마치 몹쓸 병이나 커다란 인생의 결격사유라도 되는 것처럼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대머리였고, 그들이 대머리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거나 덜 존경을 받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생각나는대로 주워 섬겨도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베르그송 다윈 피카소 레닌 등이 모두 대머리였고, 동양에도 관을 쓰고 있어서 그렇지 틀림없이 공자나 맹자 노자 장자중에서 두어명은 대머리였을 것이다. 그런 인류의 어른들에게 대머리약을 선전한다면 정말 희극적이지 않겠는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크게 꾸지람을 듣고 매까지 맞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풍조 속에서 또 하나의 희극적 콤플렉스가 다이어트이다. 대머리가 주로 남성에 해당되는 사항이라면 다이어트는 주로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종용하는 약과 식품들의 광고는 대머리약에 견줄 바가 아니다. 다이어트 하다가 죽은 처녀도 있다니 가히 다이어트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천박한 사회는 천박한 유행과 풍조를 낳는다. 문제는 겉이 아니라 안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시간에 의해 소멸되어가는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영혼과 지성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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