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패자는 프랑스최근 프랑스정부가 대우전자의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를 번복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우의 톰슨멀티미디어 인수가 사실상 무효화한 것은 한 기업의 실패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며 한국기업의 해외진출과 국가이미지에 대한 「장벽」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 프랑스정부가 대우측의 인수안에 대해 타당성을 인정하고 톰슨멀티미디어를 대우전자에 매각키로 결정한 것은 현실적 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먼저 유럽연합(EU)의 독과점 규제조항에 의해 미국 일본기업의 인수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프랑스기업들은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를 실익이 없는 프로젝트로 인식했다.
결론적으로 주인없는 공기업, 방만한 경영과 브랜드관리 실패로 침체에 빠진 톰슨을 구원하고 고용을 유지하며 장기적으로 프랑스경제에 기여하겠다는 비전과 약속을 제시한 기업은 없었다. 오직 대우전자만이 주인없는 회사를 주인있는 회사로 전환시킴에 따른 생산성 증가를 노렸고, 특히 세계경영의 효율성 증가와 기술 및 시장 확보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예측하고 톰슨멀티미디어 인수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프랑스 언론과 야당 노조가 정부의 결정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반론의 요지는 「후진국 한국의 작은 기업에게 프랑스의 자존심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치논리」가 끼어들면서 민영화위원회의 권고로 대우전자의 인수계획은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민영화위원회의 권고는 톰슨멀티미디어의 가치(디지털디코더 및 평면스크린 기술)에 대한 저평가와 대우전자의 투자 및 고용창출 약속을 보장할 법적 규제가 없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프랑스정부는 분명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정부의 번복은 분명 떳떳치 못하고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신용없는 행동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식의 자세로는 국제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또 프랑스정부의 이번 결정은 세계무역기구(WTO)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페어플레이정신에 입각한 경쟁, 공정하고 합리적인 룰과 투명한 절차에 지배되는 파트너십이 WTO정신의 기초다.
프랑스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프랑스가 자랑해온 그들의 문화적 자신감이 그릇된 국수주의와 인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인정한 꼴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결국 이 게임의 최후의 패자는 프랑스 국민들임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을 보면 프랑스정부의 대우의 톰슨멀티미디어 인수결정 번복에 무력한 현실을 느끼게 된다. 한국은 이미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다.
먼저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세계화정책이 실제 어느정도나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가이익 수호에 기여하고 있는지 총체적 재점검이 필요하다. 세계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이익을 지키고 관철하는 성숙하고 당당한 정치력을 가져야 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한국정부가 프랑스정부에 공식해명을 요구하고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에 대해 항의한 것은 매우 옳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WTO제소 검토와 프랑스와의 통상불균형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는 단지 특정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해외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기업의 문제이다. 정부의 과감한 인식전환과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한다.<미 미시간대 석좌교수·한미경제학회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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