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온의 공존’ 프로같은 신인/총선 첫 서울여대에 기여/정치인으론 높은 인기/당내 만만찮은 기피론에 순응이냐 도전이냐 주목이회창 신한국당 상임고문에게 96년은 도전의 한해였다. 숨가쁜 1년이자 굴곡많은 열두달이었다. 지난 1월 신한국당에 전격입당하면서 15대총선 선대위의장으로 임명되자, 그에겐 남다른 정치적 무게가 실렸다. 그가 여권의 강력한 차기대권주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고, 신한국당 전국구후보 1번에 지명됨으로써 그의 실체는 정치권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15대 총선결과 헌정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여대현상을 기록하자 선대위의장이었던 그의 정치적 위상은 한층 강화됐다. 그러나 여권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정치신인」 이고문의 독주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고문의 정치 1년은 「강온병합」으로 요약표현할 수 있다. 일반에게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대쪽」 「법대로」 「원칙주의자」 등이지만 이런 표현들이 그를 모두 담고있지는 못하다는 게 여권내의 일반적 평가이다.
그는 역린을 건드리는 강수를 몇차례 두었다. 입당직후 한 대학 강연에서 『소나무가 토양에 맞지않아 말라죽더라도 전나무나 갈대가 되지 않겠다』고 소신을 밝혔던 그는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는 후보경선 관행을 정면비판하기도 했고 대권후보 조기가시화가 바람직하다는 발언도 했다.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경고에 대해선 『민주화가 안된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는 표현으로 정치적 응수를 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들은 자신의 대중이미지 제고에는 득이 됐지만 여권으로부터는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월이후 이고문의 행보는 눈에 띄게 「순화」됐다. 김대통령의 대권논의자제 언급이후 모든 대권주자들이 몸가짐을 낮췄고 이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달 27일의 춘천발언은 그런 점에서 유의미했다. 그 당시 「더러운 정쟁」 부분이 부각되는 바람에 묻혀버리긴 했으나 그로선 상당히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의 『대선후보 선정과정에서 대통령의 의사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데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발언은 암묵적이나마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김심이 자신의 향후진로에 요체가 될 것이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셈이었다.
그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그룹을 형성하면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대중성이 높아질 수록 당내외의 역풍도 적지않다. 특히 여권내에 여전히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이회창 기피론」은 그가 해결해야할 큰 과제다. 그가 「순응」으로 이 장벽을 극복할지, 아니면 과감히 「제거」해 나갈지, 앞으로 주목할 대목이다.
◎97대선과 이회창/‘김심과의 접점’ 난해한 묘수 풀까
이회창 고문의 최대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대중적 인기다. 높은 대중인기는 야권의 카운터파트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동인이 된다. 대선에서의 당선가능성이 여권주자 선택의 제1요건으로 작용할 공산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이 점은 당내의 다른 대권예비주자들에 대한 그의 비교우위의 근거가 된다. 이는 또한 그의 최대약점으로 지적되는 취약한 당내 지지기반을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DJP연합구도를 비롯한 야권의 변화가 내년 대선에서 최대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유리한 환경조건이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넘어야할 장벽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김심의 향배가 문제다. 이고문은 최근 여러 자리에서 여권이 대선후보 선정작업을 너무 서둘러선 안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얼마전 몇몇 언론인과의 자리에서도 『정권의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만큼 차기 대선후보선출과 관련한 행사가 너무 일찍 가시화해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권논의를 가능한 한 늦추려는 김심에 대한 화답으로, 『여권후보가 조기에 가시화하는 것이 정국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종전의 발언과는 크게 달라진 언급이다. 이는 권력누수를 무엇보다 경계하고 있는 여권핵심부와의 교감폭을 넓히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기도 하다.
이고문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의 대중인기는 그동안 공직에서 쌓아온 독특한 성향에 문민정부들어 여권핵심부에 순응하지 않았던 강인한 이미지가 상승효과를 거둔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점 그의 대중성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문민정부가 만들어준 것이라는 역설적 견해의 성립근거가 된다.
김심을 배제한 이고문의 완전한 홀로서기는 그 가능성이 극히 제한돼 있다. 그렇다고 2인자 처지에 머무를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그는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 「대세몰이 정공법」과 김심과의 부단한 「거리좁히기」라는 이율배반적 카드로 대선 전초전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8문 8답/“정치적 필요인한 개헌반대/실질경선돼야 국민들 납득”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덕목은.
『차기 대통령은 21세기 고도산업화·정보화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비전과 능력을 가져야한다. 이를 위해선 첫째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도덕성은 윤리적 차원만이 아니라 민주화와 사회규범에 대한 확고한 의식까지 포함한다. 둘째는 21세기 문명사적 변혁을 헤쳐갈 수 있는 통찰력과 판단력을 갖추어야 하며, 셋째는 어려운 일을 피하지않고 국민을 설득하고 통솔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최근 경제난을 해결하는 방안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고비용구조는 급속한 경제성장과정에서 물가안정 기조가 정착되지 못한데 근본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선 물가 기대심리를 안정화시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비용구조 못지않게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생산의 저효율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1인당 부가가치, 에너지소비량, GNP대비 연구개발투자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비용·저효율구조는 매우 근본적이고 구조적이어서 단기처방적인 정책수단만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일관되고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21세기를 불과 몇년 앞둔 현시점에서 다시한번 국민들이 마음을 한데 모아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때이다』
―통일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옳은가. 향후 대북정책은.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충분한 전쟁억지력을 유지해야 한다. 다음으로 확고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시각에서 꾸준히 대북한 교류와 접촉을 확대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완화 및 북한의 체제변화를 이끌어내야한다. 마지막으로 주변국가의 긴밀한 관계, 특히 미국과의 공조가 중요하다』
―현행 헌법의 대통령단임제에 대한 견해는.
『현행 대통령단임제가 반드시 이상적인 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내·외적인 시대환경에 비추어 국가 사회발전에 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개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고 정치권력의 편의나 특정정당의 당리당략을 위해 개헌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국민합의에 의해 이루어 놓은 헌법구조를 정치적 필요와 타협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결코 옳은 것은 아니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현정부의 개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금융실명제, 교육개혁등 문민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은 모두 우리사회에 절실한 것들이며 전체적인 방향을 보면 대체로 잘 잡혀있다고 본다. 다만 사안에 따라 실무적 차원의 면밀한 검토와 준비가 부족한 것이 있고, 탄탄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개혁이 되지못했다는 점은 보완되어야 한다』
―현행 당헌·당규상의 경선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경선규정상의 문제를 떠나 내용상으로 실질경선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정상 명목상으로만 자유경선을 취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 돼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우리당의 경선이 이런 방향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치러지리라 본다』
―대선 후보가시화 및 경선시기는 언제가 적절한가.
『이는 현 대통령의 임기말 권력누수현상을 방지하고 내년에 우리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는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두가지 점을 고려해 결정되어야 한다.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늦지도 않은 시점에서 각각 당내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야권후보 단일화여부에 대한 전망은.
『현 시점에서 가부에 대한 전망을 섣불리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야권후보 단일화여부는 권력분점에 대해 어떻게 합의하고, 그 약속에 대해 서로가 어느 정도 믿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러나 야당후보의 단일화 방법이 권력장악만을 위한 하나의 편법에 그칠 경우 국민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권 어록/“비민주 정당엔 미래가 없다”
◇『대권약속이나 받고 입당한 것으로 보는데 나는 그렇게 천박한 사람이 아니다』(1월31일 고려대 초청강연)
◇『될 사람을 정해놓고 하는 형식적 경선은 당헌취지에 반하는 것이다』(5월15일 시사주간지 인터뷰)
◇『어떤 측면에서는 좀더 빨리 실제적으로 여권후보가 가시화하는 것이 정국안정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7월31일 시사주간지 인터뷰)
◇『당내 자율화와 민주화가 이뤄지지않는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8월23일 지구당 개편대회)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이지 민주계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계를 경쟁진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11월19일 시사월간지 인터뷰)
◇『나는 정치에 발판이 없이 당에 들어온 사람으로 계파가 없다는 것이 화합의 정치, 편벽되지 않은 통합의 정치를 실천하는데 유리한 조건일 수 있다. 대선후보 결정과정에 대통령의 의사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아직 통치일정이 남아있으므로 후보선출행사가 너무 일찍 가시화하면 대통령의 임기수행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11월27일 춘천 지방기자간담회)<정리=홍희곤 기자>정리=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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