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문학의 해가 저물어간다.앞으로 몇 주만 있으면 그 폐막의 날이다.사람들이 흔히 무슨 일을 앞두고 하는 말이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올해를 「문학의 해」로 지정하고 기획단을 구성하고, 행사와 사업의 갈래를 잡고 하던 때가 그야말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밑이 성큼 눈앞에 와 섰다. 그러니까 「시작이 반」이 아니라 「시작이 전부」인 것 같다.
시작과 출발은 언제나 가슴 벅차고 설레는 일이지만 막상 끝이나 마지막은 어딘가 서운하고 아쉬운 것이 상례이다. 낚시를 몹시 즐기던 어느 소설가는 주위 사람들의 질문에 분명히 말하기를 『낚시란 떠나는(출발) 재미로 간다』고 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고기가 잡히면 잡고, 안 잡히면 못잡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 모든 일의 순리를 일깨우는 말이다. 문학의 해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조직위원회가 열리고, 상임위원들이 선출되고, 집행위원회가 구성되고, 「문학의 즐거움을 국민과 함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제법 야단스럽게 출발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2월, 이 시점에 뒤돌아보는 자리는 대단히 쓸쓸하다.
이렇다 할만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모처럼 정부가 마련해준 문학의 해라는 마당이 결코 무위나 허사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여러가지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20여가지의 행사를 통한 문학인 상호간의 이해와 국민(독자)과의 친숙한 만남은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한민족 문학인대회는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국내외 문학인들의 모임으로 큰 의미를 남겼다. 광복 이후 1,000여명의 문학인이 한자리에 모인 잔치도 처음이고 그렇게 길고도 진지한 심포지엄을 통해 이루어진 내일로 향한 우리 문학의 설계는 더욱 값진 것으로 여겨진다.
문학의 해가 설정한 지표는 여러가지였다. 무엇보다 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문학을 통한 인간성 회복, 문학인의 위상제고, 문학 창작의 활성화를 위한 기반 조성사업 등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추진한다고는 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 여러 사람들이 내리겠지만 조직위원회가 한정된 예산과 조직,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이루어낸 성과는 그런대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창의력과 개성이 중시되는 문학인 특유의 비판과 충고에 귀를 열어놓고, 폭넓은 참여와 화합적 분위기 조성에 힘썼지만 뜻대로 다 이루지는 못했다.
무슨 일이든 완벽이란 있겠는가. 문학의 해가 그동안 영상 매체에 뒤밀려 다소 위축된 문학을 전면으로 끌어내어 활성화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치더라도, 막상 문학인들을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이를테면 구체적인 문학인 복지방안이라든가 근대 문학관 건립 등 근본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96 문학의 해 조직위가 비록 한시적 기구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사업이 실로 많다는 것을 절감한다.
한 예로 문인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원고료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것은 문인들 스스로가 해결할 문제라기보다 정부나 문학 지원 담당 기관에서 과감하고 획기적인 단안 없이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바라던 근대문학관 건립도 올해가 그 건립 원년이 되기 위해서는 서울 어디에나 삽질(기공식)이라도 하고 가시적인 업적이 있어야 옳았다. 가장 큰 목표사업이 유예된 셈이다. 시작과 끝은 이렇게 차이가 있는 것인가 속으로 다져 물어본다.<문협 이사장·문학의 해 조직위 집행위원장>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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