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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메시지/진회숙 음악평론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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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메시지/진회숙 음악평론가(1000자 춘추)

입력
1996.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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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고 설치미술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설치미술이라고는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전시된 작품들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작품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기법의 조야함 때문에…. 미술에 대해 초보적인 지식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나에게 조차도 그날의 전시회는 견딜 수 없는 거부감으로 다가왔었다.소위 설치미술이라는 미명 하에 그런 수준이하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때 옆에서 작품을 구경하던 딸아이가 『저게 무슨 예술작품이야. 그럼 나도 휴지조각 같은 걸 아무렇게나 종이 위에 붙이고 작품이라고 하면 되겠네』라고 했던 말이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천진한 어린이의 눈에 어른들의 거짓을 들킨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날 또 하나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작품들이 메시지를 너무 천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개의 작품들은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방법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마치 상품광고를 보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는 것이다. 예술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창조적인 손길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그 전시회의 작가들은 모르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에서는 작곡가의 역량부족이 그럴듯한 메시지의 부각을 통해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새로운 음악」을 표방하고 있는 음악회에 가 보면 음악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보다는 작곡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더 앞설 때가 많다. 음악보다는 팸플릿의 작곡의도가 더욱 돋보인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과다한 이념으로 포장된 작품들은 무엇인가를 얘기하겠다는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직접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유치하고 조야한 방법으로….

작곡가는 모든 것을 음악을 통해서만 얘기해야 한다. 메시지 역시 풍부한 음악성과 성숙한 예술기법을 바탕으로 음악 그 자체 속에 녹아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지가 작곡가의 역량부족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어 있는 우리의 음악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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