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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떠야 방송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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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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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시청률까지도 좌우… 3사 경쟁넘어 전쟁으로/KBS­‘목욕탕집’‘첫사랑’ 잇단 히트·타사 부진 반사이익까지·행운의 여신이 계속 웃을지?/MBC­화려한 과거로의 몸부림 도중하차·자극적 소재에도·침체 못벗어나/SBS­‘모래시계’‘임꺽정’ 잘만든 한편 10편보다 낫다·그러나 종종 무리수 ‘극과 극’드라마 왕국이다.

유부남, 유부녀의 야릇한 사랑을 그린 드라마 한 편은 우리 사회에 잔뜩 바람을 불어넣고는 윤리논쟁을 불러일으키다 급기야 점잖은 국회로까지 진출했다. 드라마 망국론까지 나왔다.

분단, 전쟁, 산업화, 독재와 권위주의 정치 등 현대사의 파란이 남긴 상처가 국민들을 이야기 속에, 드라마의 세상 속에 쉽게 젖어들게 하는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일까. 드라마만큼 시청률이 높고 방영 횟수가 많은 장르도 없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은 방송국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먹여 살린다. 드라마로 한 번 뜬 스타는 버라이어티 쇼, 코미디, 토크쇼 등에 얼굴을 내밀며 시청자들을 끊임없이 사로잡는다. 심지어 뉴스의 시청률마저 드라마와 운명을 같이 한다. 방송국에서는 드라마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한다.

당연히 방송사는 드라마에 사운을 걸고 죽기살기로 나선다. 지난해 중반부터 시청률 경쟁에서 독주하고 있는 KBS의 부상이나, 「드라마 왕국」 MBC의 침체 모두 드라마에서 비롯됐다.

가을 개편이후 방송중인 드라마는 총 35편 (KBS1 5편, KBS2 9편, SBS 9편, MBC 12편). 최근에는 사극 동시방영, 공격적 편성으로 드라마 경쟁은 전쟁으로 치닫고 있지만 방송 3사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KBS가 교묘히 시청자 심리를 타고 정상에서 안주하고 있다면, SBS는 「한건주의」를 무기로 하고, MBC는 침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주말극 「첫사랑」 50.3%, 일일극 「사랑할 때까지」 38.1%. 지난 2일부터 8일 사이의 시청률 성적표는 올 가을을 고비로 신 드라마왕국으로 입지를 굳힌 KBS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라디오 드라마」라는 비판 속에서도 인기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목욕탕집 남자들」, 15주 연속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첫사랑」 등, 한마디로 탄탄대로다.

하지만 KBS 드라마의 부상은 자체 노력이라기보다 타방송사의 침체로 인한 반사이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BS와 MBC가 「모래시계」와 「까레이스키」로 숙명의 대결을 벌인 후 「드라마 왕국」 MBC는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그후 SBS마저 「모래시계」의 인기가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사라진 후 변변한 「작품」을 내지 못했다. KBS는 그 공백을 차지한 것이다.

KBS 최상식주간도 『우리는 정통드라마를 고수해왔다. 홈드라마와 멜로물을 교대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먹혀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KBS는 한 손에는 홈드라마, 다른 한 손에는 멜로물, 양 칼을 차례로 휘두른 것이다.

「바람」처럼 불어온 영광은 「바람」처럼 사라져 간다.

미니시리즈 「슈팅」과 「원지동 블루스」의 조기종영, 현재 방영중인 월화드라마 「아내가 있는 풍경」, 수목드라마 「머나먼 나라」의 부진 등. 사극대결장에 나선 「용의 눈물」의 진로도 아직은 미지수. 곳곳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홈드라마와 멜로물만으로는 험난한 드라마 전쟁에서 수성이 힘들다. 복고풍의 향수 자극과 지루한 일상사의 이야기만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두겠다는 것은 너무 안이한 전략이다.

병영생활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낸 미니시리즈 「신고합니다」, 작품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신TV문학관」 등은 KBS 드라마가 가야할 한 방향을 암시해주고 있다.

요즘 MBC TV제작국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주말 4회 방송이라는 초강수를 둔 새 주말드라마 「사랑한다면」이 기대에 못미쳤기 때문이다. 첫방송에서 「사랑한다면」은 7시대 시청률이 20%를 간신히 넘었으나 KBS2의 「첫사랑」이 시작된 8시부터 10%대로 떨어졌다.

「사랑한다면」의 부진은 MBC 드라마의 현재 위치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MBC 드라마는 아직도 「드라마 왕국」이라는 화려했던 과거에 매달리고 있다.

과거의 MBC 드라마는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MBC의 감각적인 드라마는 문민정부와 신세대, 미시족 등 사회 곳곳에서 시작된 새로운 흐름을 타고 만드는 것마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태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트렌드 대신 감동을 원한다. KBS의 드라마가 먹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MBC는 시청자들의 달라진 취향을 받아들이려 하기보다는 예전에 했던 방식대로, 예전 사람들을 내세워 인기를 만회하려 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대신 KBS의 인기 프로그램을 본따기에 급급했다. 일일드라마 「자반고등어」는 「바람은 불어도」를, 「가슴을 열어라」는 「목욕탕집 남자들」을 다분히 의식한 것이었다. 고석만 김종학 등 간판급 PD들의 공백과 KBS SBS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제작조건도 겹쳤다.

MBC가 「드라마 왕국」의 재건을 위해 택할 수 있는 것은 도중하차와 자극적인 소재였다. 시청률이 낮으면 내부의 반발도 시청자와의 약속도 무시했다.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평이 좋았던 「동기간」이 3개월만에 막을 내렸고, 소시민 가족의 밝고 건강한 삶을 웃음과 함께 보여주겠다던 「가슴을 열어라」도 「첫사랑」의 인기에 눌려 슬그머니 멈췄다. 올 최고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애인」은 불륜, 뒤이은 「화려한 휴가」는 폭력이 소재였다. 「사랑한다면」은 종교 갈등이다.

악순환이다. MBC TV제작국의 분위기가 밝아지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지 모른다.

과감한 투자, 치밀한 사전기획, 화려한 스타시스템. SBS의 약진은 우연이 아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져간 가족애를 되살려주는 복고풍 드라마 「형제의 강」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3년을 준비한 비장의 카드 「임꺽정」은 무림평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방송평론가 원용진씨는 『시청자의 입맛을 골고루 맞추는 드라마 편성의 승리』라고 분석한다. 방송기자가 뽑은 올해의 최고 드라마로 선정된 「임꺽정」에도 전설의 고향, 무협, 러브스토리 등 온갖 조미료가 들어 있다. 모든 세대의 시청층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의 비결이다.

여기에 민영방송 특유의 「한건 올리기」근성도 빠질 수 없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이 웬만한 드라마 10편보다 낫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시청자는 최고만을 기억할 뿐이고, 결국 「드라마 전쟁」은 「All or Nothing 게임」이라는 인식이다.

「모래시계」가 그것을 잘 증명한다. 「모래시계 세대」라는 신조어를 탄생 시키며 갖가지 사회적 신드롬을 낳은 「모래시계」는 신생방송국 SBS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편당 제작비 2억원, 36부작 사전제작, 3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출연진. 「임꺽정」은 「모래시계」의 제작 스타일을 그대로 좇고 있다.

하지만 「부자유친」 「남자대탐험」 등 방송기자가 뽑은 올해의 최악드라마에 SBS 드라마가 2편이나 끼어 있다는 사실은 편차가 큰 SBS 드라마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무리수도 많다는 이야기다. 최근 시작한 「연어가 돌아올 때」도 벌써 노골적인 성묘사로 방송위원회의 철퇴를 맞았다.

하지만 SBS는 자신만만하다. 이종수 드라마 CP(책임PD)는 『드라마의 승패는 결국 기획에 달려 있다. 우리는 내년도까지 기획을 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박은주·박천호·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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