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부조금의 법적 금지는 타당한가, 또 가능한 일인가」 지난달 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최로 열린 「건전가정의례 정착방안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제기된 부조금 법적금지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찬반의견을 들어본다.◎찬성입장/이현송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상부상조’서 ‘금전교환’으로 왜곡/정부차원 허례허식 철폐 나설때
오늘날 우리사회의 혼상례 문화를 돌아보자. 서민에게 청첩장은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많은 경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부조금 고지서」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에게 혼인이나 상이란 산하기관 혹은 하청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청첩장이나 부고를 발송해 한목잡는 「공인된 기회」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이런 형태로 결혼식장에 초대받은 하객들이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하하는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 부조금을 전하고는 바로 피로연장으로 향한다. 상가를 방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권력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많은 부조금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적은 부조금을 받는 차이 밖에 없다. 상호부조로서의 부조금의 의미는 탈색되고 순전히 금전적인 교환으로서의 의미만 두드러진다. 이러한 왜곡된 문화와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상호부조로서의 의미가 담겨있는 한 부조금 교환관행은 나쁜 것은 아니다.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가 안 주고 안 받는 사회보다 따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고지서가 날아들고, 단지 부조금을 내기 위해 결혼식장이나 상가에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마음에 없는 하객이나 조문객」에게 일률적으로 고지서를 보내는 관행은 없어져야 하며 부조금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개선방향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허례허식을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시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물론 이 법으로 인하여 처벌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부분은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해보면 다수 국민이 허례허식 금지조항의 존속을 찬성하고 있으며, 허례허식은 어떠한 형태로든 정부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부조금 수수관행과 관련하여 정부가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법률로 금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솔선수범하여 부조금을 교환하지 않는 것이다. 부조금의 폐해는 일반서민은 서민대로, 부유층 및 지도층은 그들대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정부차원에서 허례허식을 막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부조금 수수관행을 보편적으로 규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적어도 예식장 접수대에서 무분별하게 부조금을 접수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사람의 경우 「부조의 뜻」을 전달할 방법은 많다. 접수대를 설치해 「납부」를 사실상 강제하는 행위는 규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조금 접수를 법으로 금지할 경우 당장 반발의 여지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국민 대다수가 적극 호응할 것으로 생각한다.
◎반대입장/한태선 한양대 사회과학대학장·문화사회학/관습·의식변화 등 없인 효과 의문/우선 공직자 중심 규제가 바람직
건전한 가정의례 정착을 위해 부조금을 법률을 규제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새 법을 통해 허례허식과 과소비 풍조를 줄여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데 있다.
그 이유와 방안은 대략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부조금 법적금지를 제도화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문화적 힘」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힘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제도는 실효성이 없어 백발백중 실패한다. 둘째, 공청회에서 제시된 부조금 법적금지는 「어떤 사회계층을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하는 부분이 전적으로 빠져 있다. 그 대상이 막연한 국민 혹은 시민이 된다면 그 법은 또 다시 죽은 법이 되고 말 것이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문화적 힘의 결여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법은 매우 보편적인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들은 법을 더욱 강력하게 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같은 주장은 우리 문화의 얼을 모르는 아마추어 정치·사회지도자들의 상투어일 따름이다. 우리에겐 법 이전에 그보다 백배 천배 강력한 「공동체의 예법」이 있다. 법의 생명도 법 규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려는 우리사회의 문화적 규범 안에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부조금을 금지한다면 어떤 집단이나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구체적 대상이 모호하면 그 법은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같은 실수를 지난 50년간 반복해 왔으며 아직도 우리사회 구석구석에는 그 망령이 살아 있다. 때문에 나는 정부가 부조금 금지를 법제화한다면 그 대상을 공직자에 국한할 것을 제안한다. 실제로 허례허식과 과소비의 풍토는 이들로부터 연유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반 국민과는 무관하다.
한국사회는 관료적 권위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여타 경제 사회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따르게 마련이다. 상하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관리들이 먼저 이를 실천한다면 실효성 없는 법을 만드는 것보다 큰 파급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계층간 위화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를 줄여나갈 수 있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법은 권고적, 훈시적 규정의 미약함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엄격한 감시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 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부조금문제에 대한 우리 시민의 끊임없는 관심과 의식개혁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시민이란 국민을 대치하는 개념으로 도시나 농촌을 가릴 것 없이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민들의 참여가 늘어날 때만이 부조금 법적 금지문제도 실현되는 풍토가 조성될 수 있다.
◎결혼축의금만 한해에 1조7,338억원 추정/미풍양속 순기능 불구 ‘뇌물성’ 부작용까지/복지부 내년 관련법 개정해 98년 시행방침
결혼식 부조금이 사회통념상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반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봐도 좋을 것같다.
혼례와 관련된 직간접비용은 94년을 기준으로 약 12조원으로 추계되고 있는데 이중 하객측 부담은 2조7,099억원이며 축의금만 1조7,338억원에 이른다.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음직한 축의금 부담의 실제 규모가 상부상조라는 미풍양속을 넘어섰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녀결혼식 때 수억원의 부조금이 걷히는가 하면 한번에 수십만 수백만원씩의 뇌물성 부조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평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온 청첩장을 받아들고 과연 부조를 해야 할지, 한다면 얼마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부조금은 오래된 사회적 관행으로 생활현실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으로서 순기능을 하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친인척간에, 가까운 직장동료, 친구, 지인간에 건네지는 부조금을 무조건 배척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부조금의 법적금지 문제는 법의 실효성여부를 떠나 입법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을 빚을 것 같다.
보건복지부는 부조금의 문제가 우리사회의 잘못된 혼례문화와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다. 혼주측은 신분이나 세를 과시하기 위해 많은 하객을 초청하고, 초청된 하객은 부조금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이들을 섭섭지 않게 하기 위해 호화판 피로연이 필요하게 되는 등 3박자가 물고 물리는 악순환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소한 예식장에서의 부조금 접수행위나 직장에서의 부조금 거두기 같은 것은 규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복지부의 생각이다.
복지부는 가정의례와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이달 중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개정시안을 마련하고 97년 하반기에 관련법을 개정, 98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김상우 기자>김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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