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 타협정치 일단 합격점/국회 물리력 행사않고 당 정책기능 살리며/프로정치인 향한 질주…/“과단성 없다” 비판도「96년의 정치」가 저물고 있다. 때맞춰 대통령선거도 1년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96년 한해의 정치행보를 정리하고, 대선 예비주자로서의 향후 역할 등을 조망하는 송년 「결산의 장」을 마련한다.<편집자 주>편집자>
이홍구 신한국당대표는 얼마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대표 자리가 총리보다 몇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적이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복잡미묘한 역학구조가 중첩된 정당조직은 의사결정구조가 엄격한 행정부보다 통솔하기가 훨씬 힘들다는 얘기인듯 했다.
힘든만큼 그는 96년 한해를 숨가쁘게 뛰어온 정치인이다. 여전히 스스로를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이대표가 프로세계에 적응하는 속도는 의외로 빨랐다. 그는 결과적으로 아마추어와 프로와의 차별화를 시도함으로써 정치적 소득을 얻어내는 다분히 프로적인 자질을 선보였던 것이다.
지난 5월7일 신한국당 대표에 취임한 이대표는 임시국회 대표연설에서 「새정치=선택의 정치」라는 화두를 신호탄으로, 기성정치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우선 어떠한 경우에도 국회에서 다수당의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개원국회와 정기국회가 정쟁의 흔적을 남기긴 했지만 과거와 같은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이대표는 나아가 새로운 당정관계의 모델을 정착시켜 나갔다. 당정협의를 거치지 않은 법안 등 각종 안건은 부처 차관회의에도 회부되지 못하도록 제도화했다. 당의 정책기능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의도였다. 방만한 국방예산을 정부쪽에 반송하고, 골치아픈 위천공단문제를 피해가지 않았으며, 경제상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을 경우 정부를 과감히 질타했다. 그러다보니 정부 각부처 실·국장들은 물론이고 장·차관들까지 여의도 당사를 자주 찾았다.
활발한 정책활동은 당내 언로를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온 게 사실이다. 이대표는 무엇보다 소속의원들과의 토론을 즐겼고, 그런 기회를 통해 당내민주화의 모양새를 갖춰나가려 했다. 당의 단합과 결속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나갔다.
96년은 이대표에게 있어 정치예비고사를 치르게 한 해였다. 결과는 일단 합격이다. 그러나 이대표에 대한 당 안팎의 회의적 시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본의 아니게 비쳐지는 유약한 이미지는 무골호인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물론 이대표측은 투쟁과 대결의 정치시대가 지난 마당에 강력한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합리적 이미지가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대표가 강력한 리더십에 익숙해온 일반대중에 정치적 흡인력을 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대표는 똑부러진 말을 삼간다. 지난 9일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이대표는 『노동법개정안의 회기내 처리를 위해 전력을 다해 보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말의 뉘앙스가 단호하지는 않다. 과단성은 정치지도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이다. 「과단성과의 결부」, 이대표가 97년에 풀어야 할 숙제중의 하나이다.
◎97대선과 이홍구/경선관리자냐… 대선후보냐… 관심
97년은 「선택의 해」이다. 일반국민이나 정치인 모두 정치적으로 큰 선택을 해야 한다. 집권당의 이홍구 대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내년 대선과 관련한 거취문제에 대해 간접화법으로 일관한 그였지만 싫든 좋든 이미 그는 대권후보반열에 올라 있다. 「무욕론」의 허실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인 이홍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예사롭지가 않다.
이대표는 신한국당의 단합과 결속을 향도하는 일을 제1의 책무로 여기고 있다. 대권을 못잡은 이대표는 흠이 될 것이 없지만 당의 단합을 못이룬 이대표는 흠이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선정국을 준비하는 이대표의 1차적 관심사는 「공정한 경쟁」의 당내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최근 이한동 김윤환 고문을 대통령특사로 파견하자고 청와대에 건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자신을 포함한 당내 대권주자들이 일탈가능성이 없는 균등한 여건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이대표의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대표가 대권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이 있다면 대표직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다.
당총재인 김영삼 대통령과 항상 지근거리를 유지해온 이대표로서는 다른 주자들에게는 항상 견제의 대상이다. 이른바 김심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관측도 여기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심도 이대표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자 한계이다. 하지만 그도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알게 모르게 나름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축적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최근들어 당내 소장파의원 및 젊은 대학교수들과도 만나 국가장래와 미래정치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직을 맡기전 그는 대중적 지지기반은 물론 당내기반마저 미약했었으나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결과에선 이회창 고문과 함께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경우 다른 주자들과는 달리 김심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경선과정의 관리자로 그칠지, 결승라인에 들어설 수 있을지는 그의 정치적 자생력, 그리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시운에 달려있다고 해야겠다.
◎8문 8답/현행 경선규정 별문제 없어/개혁 21세기 향해 지속돼야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덕목은.
『역사의식과 민족의 앞날에 대한 비전이야말로 대통령이 지녀야 할 최우선 덕목이다. 나아가 현실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통찰력과 판단력, 국민의 잠재능력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국가경영능력, 통일 안보 경제 등 국가 주요이익을 국제 환경속에서 진작시킬 수 있는 능력과 개인적 위상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갈수록 복잡다기해져 가는 후기 산업사회와 정보화 시대를 맞아 기능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이밖에 지역간 세대간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자질도 필요하다』
―최근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공동체 시장경제론에 입각한 과감한 규제완화와 개방촉진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의 경제난은 경기순환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대한 과감한 개혁(금융산업 포함)이 뒤따라야 한다. 또 21세기에 부합되는 국민교육에 대한 획기적 투자, 과학기술 중심의 21세기형 경제(벤처기업지원 포함)환경의 조성, 안정적 노사관계의 제도화, 사회간접자본(SOC)의 확충 및 성숙된 경제체제에 걸맞은 국민생활 습관의 정착 등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경제는 구조적 조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에게 이에 수반될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통일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옳은가, 향후 대북정책은.
『첫째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입각한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의 활성화(북의 평화적 변화유도)가 필요하다. 둘째로는 강력한 힘의 우위와 한미공조체제의 강화로 북의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셋째는 남북관계의 예기치 못한 변화(북한체제 붕괴 포함)에 대비한 구체적 계획이 수립, 집행돼야 한다. 넷째로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일관된 통일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능력이 보완돼야 한다. 통일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동참을 유도하고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현행 대통령 단임제에 대한 견해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시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지금은 이를 논의할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 대선이 끝나면 첨예한 이해대립을 떠나 자유로운 입장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매년 선거가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권위주의 시대로 부터 문민시대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일련의 개혁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다음단계인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한 토대구축에도 일단 성공했다고 본다. 이제는 21세기를 향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추진이 다음과제로 남아 있다고 봐야한다.개혁정책은 중단없이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
―현행 신한국당의 당헌·당규상의 경선규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선규정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미비한 점이 지적되면 그때가서 합리적으로 보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선후보 가시화 및 경선시기는 언제가 적절한가.
『경제상황, 안보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고 선거법과 당헌에 부합되도록 하는 적절한 시기선택이 원칙이다. 현재의 제반상황으로 볼 때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야권후보 단일화여부에 대한 전망은.
『남의당의 문제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권교체와 권력분점에 의한 의욕은 표출되고 있으나 정책 및 이념적 원칙에 대한 입장정리가 전혀 없는듯 해 예측하기 곤란하다. 여기에다 우리정치의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더 점치기 어렵다』
◎대권 어록/“강한 리더십은 과거의 리더십”
◇『대통령이란 직책은 국가의 명운을 책임지는 등 다른 자리와는 다른만큼 예전처럼 떠밀려서 대권후보를 맡게될 가능성은 없다』(6월28일, 방송기자클럽 토론)
◇『21세기로 가면서 리더십의 성격이 바뀔 것이다. 정치적 시비를 따지는데 강한 리더십은 과거의 리더십이다. 새로운 지도자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개발하고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7월10일, 여의도 연구소 「정책논단」)
◇『자유경선이 틀림없다. 경선을 안하면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다』(10월17일, 한 시사주간지와 인터뷰)
◇『내년 대선에서는 우리 당이 젊고 미래지향적 후보자를 내세우는 반면 야권은 연로한 후보를 내세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년 선거결과를 낙관한다』(11월4일, 고위당정회의 만찬)
◇『차기 대통령후보 선정을 위한 절차는 모든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 경선이 될 것이다. 부드러운 것이 결코 약한 것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강할 수도 있다. 국민들은 지금 안보 안전 안정 등 3개의 안자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11월7일, 대표취임 6개월 기자간담회)<정리=정진석 기자>정리=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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