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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해도 귀찮아 신고 안해요”/은행·경찰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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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해도 귀찮아 신고 안해요”/은행·경찰 대책이 없다

입력
1996.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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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매매 급급 검사 뒷전/공신력 이유 결손처리 탓/신고율 10∼20% 그쳐/법·제도장치 미비도 문제/형법 외엔 규정없고 신고도 은행재량 일뿐『위폐요? 많지요. 그렇지만 식별이 어디 쉽나요. 대개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거죠. 설사 발견한다 해도 신고하지 않아요. 은행 공신력 문제도 있고 경찰에 불려다니며 괴롭힘 당하는게 싫으니까요』

한 시중은행 외환부 직원의 말이다. 한국은행 외환 관계자는 한 술 더 뜬다. 『우린 잘 모릅니다. 각 은행들이 내규로 알아서 처리하는 거지요. 외국환 관리법에는 관련규정이 없습니다. 경찰에 문의하시죠』

경찰도 별다른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성격상 은행에서 신고하지 않으면 수사가 불가능합니다. 신고를 강제할 법적 근거도 없어요. 1년에 30여건 신고가 들어오는데 그것 가지고 상설전담반을 구성할 수도 없잖아요』

국내 위조지폐 문제의 현주소이다.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당국에서 확인한 위폐만도 103건에 2만 6,450달러. 지난달 30일 외환은행 본점에서 100달러짜리 위폐 2장이 발견된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다. 그나마 적발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내은행들이 외환의 위·변조 여부를 식별할 충분한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시중은행들은 식별능력이 60∼70%에 불과한 감별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위폐감정 전문가 한명 없는 경우가 많다.

위폐를 관리하고 방지하려는 의욕과 관심도 부족하다.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외환매매 실적을 올리는 데만 급급해 위·변조 검사는 뒷전이다. 감별기를 사용하지 않거나 아예 없는 환전소들도 있다. 또한 환전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아 추적조차 어렵다.

신고를 꺼리는 은행의 비밀주의 관행도 고질적인 문제다. 위폐가 발견돼도 우선 사실을 숨기기에 바쁘다. 은행관계자들은 『경찰에서 은행직원을 자꾸 소환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게 하고 범죄자 취급까지 한다』고 항변한다. 은행들은 공신력이 손상되는 것을 우려, 쉬쉬하며 결손처리해 버린다. 이러다보니 신고율은 극히 저조해 전체의 10∼20%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외국환 위폐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형법 외에는 법령상 어떤 근거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 외국환 관리법에도 위폐 관련규정은 없다. 한국은행 내규에는 원화 위폐 처리규정만 있을 뿐이다. 각 은행들은 위·변조 외국환 처리절차에 대해 내규로 「위조외화 발견시 지점장이나 부지점장은 위폐를 회수하고 제시인의 신원과 금액, 재발 가능성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 관할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고 간단하게 정하고 있다. 규정만 본다면 신고는 은행의 재량일 뿐 의무가 아니다.

국제교류의 증대와 금융개방, 외환보유 자유화에 따라 외환 반입량이 늘고 위폐의 양도 증가하고 있다. 현찰과 외환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외국의 위폐가 밀려들 가능성은 더욱 크다. 『장차 한국이 위폐의 황금시장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거듭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폐방지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처벌규정만 있는 형법만으로는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이 불가능해요. 은행의 자율에만 맡겨서도 안되고요. 종합적인 처리절차를 법령으로 규정, 은행의 신고의무를 명시하고 위폐 검사를 강화해야 합니다』

환전이나 입금시 거래자의 신원과 지폐의 일련번호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 관계자는 『환전소나 은행창구에서 환전 기록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아 위폐수사에 여러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100달러 지폐에 대해서는 창구직원이 거래자의 이름과 달러의 일련번호를 반드시 기록한다.

위폐를 방지하고 종합관리하는 기관을 설치, 국내에 반입되는 외환을 집중 검사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위폐를 1차적으로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 위폐감식가의 양성도 시급한 과제다. 미국의 경우 각은행마다 전문가들이 몇명씩 있어 입출금되는 달러화를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 감식전문가인 한국외환은행 서태석씨는 『정확성이 없는 기계에만 의존, 형식적으로 실시하는 감별은 의미가 없다』며 『은행감독원에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위폐감식가 서태석씨/색·재질·요철이 감식열쇠/진폐는 까끌한 촉감과 탄력/색 깊고 선명한 푸른빛

『진폐는 까끌까끌한 촉감과 탄력이 느껴집니다. 색깔도 깊고 선명하며 푸른빛이 감돌지요』 한국외환은행 외환부 서태석(53) 과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달러위폐 감식가다.

달러지폐를 만지는 그의 손과 눈의 온 신경은 혼이 담겨 곤두선다. 손끝에서 전해 오는 작은 촉감의 차이, 눈으로 대하는 미묘한 색채의 차이도 놓쳐서는 안된다. 지폐의 색깔과 재질, 요철이 바로 감식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의 감식 능력은 미국에서도 인정하는 초일류다. 25초에 1백장 이상을 감별할 수 있다. 기계가 25초에 20∼25장 감별하는데 비해 4∼5배의 속도다. 정확도에서도 60∼70% 수준인 기계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런 그도 최근에 나온 슈퍼 노트의 감식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64년 카투사로 입대, 동두천 미군부대 경리부서 행정병으로 일하던 중 우연히 위폐를 발견한 것이 이길에 들어선 계기였다. 『한 흑인사병이 20달러짜리 지폐를 가져와 새것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어요. 태도가 수상해 지폐를 자세히 살펴 보니 색깔이나 모양이 다른 지폐에 비해 조잡했죠』 서씨는 즉시 헌병대에 연락했고 곧이어 미연방수사국(FBI) 직원이 달려왔다. 조사결과 사병이 가져온 돈은 위폐였다. 이 사건으로 서씨는 미군 당국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고 위폐감정 전문병으로 발탁됐다.

위폐전문가인 경리장교 밑에서 제대때까지 3년간 위조달러 감식법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69년 외환은행에 입사한 이래 30년 가까이 위조지폐 감식전문가의 외길을 걸어 왔다.

지금은 달러화뿐 아니라 엔화 마르크화 프랑화 파운드화 인민폐 등 세계 30여개국의 지폐를 감정하고 있다. 그의 취미는 예술사진. 『위폐제작술은 사진술과 유사한 점이 많아요. 예술사진을 통해 키운 색채·영상 감각이 정밀위폐를 감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정년퇴직을 5년 앞둔 그이지만 일에 대한 정열은 여전하다. 올 6월부터는 위폐감식의 맥을 잇기 위해 견습생 2명을 훈련시키고 있다. 『정년까지 이들에게 위폐감식기술을 모두 전수해 줄 겁니다. 은퇴한 후에라도 위폐가 범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니까요』

◎완전감식 아직은 불가능/위폐감별기 식별능력 60∼70%뿐

한국의 위폐감식 수준으로 과연 완전감식이 가능할까.

가장 흔한 위폐감식 방법은 위폐감별기(Dollar Bill Checker)와 감별펜을 이용하는 것. 감별기는 지폐의 표면성분과 무늬 요철을 판독, 위폐를 가려낸다. 감별펜은 색깔변화로 진위를 가린다. 진폐에 칠하면 색깔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데 반해 위폐에는 색깔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 기계의 식별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허술하게 위조된 70, 80년대 위폐는 가려낼 수 있지만 90년대 정밀위폐에 대해서는 식별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더구나 최근의 슈퍼 노트는 99% 진폐로 판정한다. 표면에 진폐성분이 코팅처리된 데다 무늬와 요철까지 정확하게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감별기의 대략적인 감별능력은 60∼70%정도. 오히려 진폐를 위폐로 잘못 감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11월 들어서만도 진폐를 위폐로 오인 신고한 사례가 3건에 달한다. 오래되거나 이물질이 묻은 지폐는 위폐로 판정하기 때문이다.

전문감식가들은 『최근 일본에서 슈퍼 노트 감별기가 개발됐지만 성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정확한 진위 판정에는 전문감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밝히는 대표적인 위폐식별법, 특히 슈퍼 노트와 진폐와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1백불짜리 지폐 오른쪽의 재무장관 서명부분 「i」자에서 진폐에는 없는 점이 위폐에는 「i」자 주위에 있다. 또한 왼쪽아래 액면표시(100)옆의 외곽겹선이 진폐의 경우 평행선인데 반해 위폐는 아래쪽이 붙어 있다. 위폐는 좌측 상단 레이스의 연결상태가 확실치 않고 지폐상단 「NOTE」의 N과 O가 서로 붙어 있다.

이밖에도 잉크 성분의 차이로 인해 지폐의 여백부분이 진폐는 푸르스름한 빛을 띄는데 반해 위폐는 허연 빛깔을 띄며 은선 영문자의 색채와 명암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러한 식별법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활용이 어렵다. 더구나 슈퍼 노트는 갈수록 더욱 정교해 지고 있어 식별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조차도 100% 정확한 식별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진위의 최종판정은 결국 미국 재무부나 수사당국의 몫이다.

더구나 일반 감별기를 사용하는 우리나라 시중은행은 위폐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슈퍼 노트는 은행에서조차 진폐로 판정돼 공공연히 유통되기조차 하는 실정이다. 금융기관들이 미연방수사국(FBI)이나 재무부의 전문가를 초청, 매년 위폐 세미나를 갖고 있지만 보안상 이유로 잉크원료와 정밀부분의 형태 등 진폐의 결정적인 특징은 알려 주지 않아 완전감식은 아직 요원하다.<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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