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학생부 중심 전환 바람직”/현제도 폐단 커 수능 폐지 장기적 과제/국내대학 학과 너무 많아 학부제 운영해야/21세기 변화대비 전공외 다양한 학문 공부를대학입시철이 다가왔다. 80여만명에 달하는 수험생들은 수능성적을 받아들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인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 부위원장 김덕중(62) 아주대총장을 만나 교육철학과 함께 수험생들의 진로선택에 관한 조언 등을 들어본다. 김총장은 한국경제학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서강학파」의 원로이다.<편집자 주>편집자>
―수능성적이 통보돼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대학이 특차모집을 시작했고 곧 일반모집도 하게 됩니다. 수험생들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는데 참고할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내년초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휴학이나 자퇴를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닐 경우 2001년에 졸업합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수험생들은 「21세기의 문을 여는 일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진로를 결정해야 합니다』
―올해 수능시험에서는 고득점자가 크게 준 반면 중하위권 점수대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대다수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데 고심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수험생들에게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21세기에는 교육에 관한한 국경이 없어질 것입니다. 국내 산업구조도 크게 변화할 것입니다. 수험생들은 각종 정보매체를 활용하거나 교사나 부모와 충분히 상의한 뒤 급변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해야 합니다』
―시대변화에 대비하라는 말씀같습니다. 전공을 고르는 데 가장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무조건 전공만을 염두에 둬서는 곤란합니다. 교육계나 경제계에 있는 친구들은 21세기는 1개분야만 공부한 학생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합니다. 전공과목외에 다른 관련학문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고 이런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는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전공 고르기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국내 대학입시에서는 적성은 제쳐두고 수능점수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학별 본고사가 사라져 이론적으로는 전국 163개대학이 모두 자체 전형방식을 통해 학생을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수능시험과 학교생활기록부를 반영토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명문대병」이 적성보다는 학교를 선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수능시험을 없애고 학생부를 중심으로 학생들을 뽑아야 한다고 봅니다』
―현행 대학입시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요.
『국내여건으로 미뤄볼 때 수능시험으로 대표되는 현행 대학입시제도는 상당기간 존속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 교육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폐단이 너무 큽니다. 오죽하면 유치원이 대학에 들어가는 첫관문이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대학입시가 얼마나 많은 사회병폐를 파생하고 있습니까. 연간 30조원에 달한다는 사교육비를 사회간접자본이나 복지시설에 투자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능시험은 앞으로 대학에서의 학업수행능력을 판단하는 자격시험에 그쳐야 합니다. 시험도 일년에 2∼3차례는 치러야 합니다』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의 학생선발기준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미국대학은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를 키운다」는 하버드대의 학생선발 철학은 차치하더라도 대다수 대학들은 특기를 학생선발시 반영합니다. 몇해전 국내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에서 최상위점수를 받은 교포2세가 하버드대에 원서를 냈다가 떨어졌습니다. 사회봉사 등 다른 분야의 활동이 전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내대학도 발상을 전환해 다양한 부류의 학생을 선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평소 총장께서는 고교생 학부모와 수험생, 교사들을 많이 만난다고 들었습니다. 지방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애로사항은 무엇이었습니까.
『지난 1년동안 16개 지역의 고교를 찾아 교사 학부모 학생 등 5,000여명을 만났습니다. 많은 지방학생들은 수도권대학에 진학하려 해도 엄청난 교육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지방학생이 수도권대학에서 공부해 사회의 역군으로 성장하려면 대학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지방학생 대부분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세워야 하며 저렴한 가격에 잘 짜여진 식단을 갖춘 학생식당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내 대학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점과 사립대학이 안고 있는 과제를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떠오르는 것이 학과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400개가 넘는 「백화점식 학과」로는 전공은 물론 부전공까지 요구하는 사회변화에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교수중심이 아닌 학생중심으로 학부제를 운영해 전공외에 유사과목을 더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합니다. 특히 사립대는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연구 및 실험시설을 더욱 확충해야 합니다. 예산결산 공개 등 투명행정이 이뤄져야 하고 재단운영도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학부제 시행에 대해 순기능과 역기능 양론이 팽팽합니다. 어떻게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교육개혁위원회는 시대변화에 맞춰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학부제를 도입토록 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른 것같습니다. 교수들의 반발과 시스템 미비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학교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학부제가 정착된 대학의 운영모형을 다른 대학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입니다』
―최근 잇따르는 청소년범죄가 잘못된 대학입시제도에 기인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제도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대학진학에 실패해 좌절한 학생들에게는 많은 유혹이 기다리게 됩니다. 인문계 고교 졸업생중 대학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나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취업하고 싶어도 병역문제 때문에 여의치 않습니다. 일부 분야로 제한돼 있는 병역면제 제도를 많은 산업체로 확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병역문제로 고민하는 고교졸업생중 희망자에게 우선적으로 군에 입대토록 하는 방안도 좋고요』
―21세기 대학의 비전과 대학생들이 이에 대비해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해 주십시오.
『어려운 질문인데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3개학과이상은 수강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측하기 힘든 시대변화를 감안할 경우 충분히 그려볼 수 있는 구상인 듯합니다. 변화를 주시하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꿈」을 갖고 비전을 성취해나가려는 의지가 요구됩니다. 인생에 6번쯤은 직업을 바꿀 수 있다는 공격적인 자세도 필요합니다』<김진각 기자>김진각>
□약력
▲34년 서울 출생 ▲61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경제학과 졸 ▲68∼70년 동대학 조교수 ▲70년 미국 미조리대 경제학 박사 ▲70∼95년 서강대 교수 ▲86∼91년 학술진흥재단 이사 ▲91년 동아시아 연구회 이사장 ▲92∼93년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95년 대학평가인정위원회 부위원장 ▲95년 아주대 총장 취임 ▲96년 교육개혁위원회 부위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