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독일 등지서 구입/“위폐제작소 3∼5곳 평양인근에 설치 운영/1불 지폐 표백 100불로 둔갑”거의 진폐나 다름 없어 위폐감별기나 전문가도 가려내기 어려운 초정밀 달러 위폐 「슈퍼 노트」는 화폐시장을 교란하는 주범이다. 그러나 이 위폐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느정도 유통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슈퍼 노트는 오프셋인쇄기나 컬러복사기로 제조된 조잡한 위폐와는 차원이 달라 90년 레바논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슈퍼 노트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기관도 식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올 7월 외환은행 한 지점에서 슈퍼 노트 2장이 발견됐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진폐로 추정했을 정도이다. 한 시중은행 여직원이 프랑스 연수 때 가져간 달러화가 현지에서 위폐 판정을 받기도 했다.
슈퍼 노트를 만드는데는 국가조폐기관에서나 사용하는 요판인쇄기가 사용되며 지질과 잉크 등도 진폐와 거의 다름없다. 이 정도를 제조하려면 요판제작에 6∼12개월이 걸리고 인쇄·조판 전문가가 다수 참여해야 한다. 특수잉크와 요판인쇄기 구입에 들어가는 돈도 막대하다.
요판인쇄기는 독일의 「데랄 기오리」, 일본의 「고모리」사에서 주문생산해 국가 조폐기관에만 판매하는 것으로 대당 가격이 120억원이나 된다. 따라서 단순범죄자나 소규모 위폐단은 손을 댈 수가 없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8종의 슈퍼 노트가 나타났고 수차례 결함을 수정한 것 등으로 미루어 국가차원의 의도적인 행위라고 거의 단정하고 있다. 미국이 90년 발행한 달러화에 넣은 200미크론 크기의 극소문자 및 반투명 그림도 반년만에 위조됐다.
초기 슈퍼 노트에서 발견된 20 군데의 결함은 계속 보완돼 최근에는 벤저민 프랭클린 초상화 및 문자 부분의 부정합 등 4군데 정도에만 결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가안전기획부는 먼저 만들어진 위폐의 어느 한쪽 면은 나중에 수정된 위폐의 어느 한쪽면과 반드시 일치하는 일정한 규칙을 보이고 있는 점으로 보아 문제의 슈퍼 노트가 특정 장소나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제조됐다고 확신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슈퍼 노트를 만들어 낼 만한 나라로 북한과 시리아 이란 등을 지목하고 있고 특히 북한을 유력한 「범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몇가지 방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북한은 74년부터 독일 등지에서 요판인쇄기를 구입하는 한편 일본에서 매년 최신 위폐감별기를 반입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 조폐국에서 사용하는 스위스제 지폐인쇄기「인텔리오 컬러 8」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0월에도 조총련계 회사를 통해 일본의 마쓰무라사가 개발한 최신 감별기 「V701」을 수십대나 사 갔다. V701은 광센서를 장착, 슈퍼 노트를 0.7초안에 판별할 수 있다.
또 귀순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북한이 평양 근교에 위폐제작소 3∼5곳을 설치, 운영중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북한 대외무역상사 사장을 지낸 귀순자는 이렇게 말했다. 『평성조폐공장 분공장에서 위폐를 찍고 있고 통일전선부도 평양의 「시대사」 인쇄공장안에 위폐공장을 세웠는가 하면 인민무력부 외화관리국 산하 서포분공장에서도 달러화 위폐를 대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위폐제조 원리는 1달러 지폐의 무늬 등을 특수약품으로 지우고 그 위에 100달러 위폐를 찍는 고도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지요』
북한 외교관이나 무역상사가 위폐를 유통하다 적발된 사례도 많다. 81년부터 지금까지 굵직한 예만도 10여건.
전문가들은 북한이 면 75%, 아마 25%의 빨강·파랑 섬유소가 들어 있는 달러화 지폐용지를 제조할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1달러 지폐 진본을 표백해 100달러짜리 위폐로 둔갑시킨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린다.<조재우 기자>조재우>
□북한의 위조달러 관련일지
▲81년 오스트리아에서 지폐 제작용 인쇄기·오프셋기 구입
▲83년 6월 빈은행에 입금된 8,000달러 위폐 판명
▲84년 북한 101연락소 위폐 다량 제작, 해외 반출
▲86년 리비아서 위폐 수천만달러 교환하다 적발
▲87년 12월 평성 인쇄공장서 1달러 500장 100달러로 변조
▲93년 4월 독일제 달러 감별기 2대 구입
▲94년 6월 조광무역, 마카오 델타은행에 위폐 9,000달러 입금
▲95년 8월 노동당소속 무역회사, 위폐 1만달러 일본업자에게 지불
▲96년 3월 캄보디아에서 북한국적의 다나카 요시미 위폐 소지혐의로 체포
◎한화 위폐도 ‘발등의 불’/컬러복사기·스캐너 대량보급 불구/경찰 사용업소 형식적 점검 고작/신고하면 배상못받는 법규도 문제
『한화는 달러보다 정교하기 때문에 위조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위조에 따른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경제성도 높지 않고요. 지폐나 수표 앞뒤에 위·변조를 방지하는 장치를 많이 숨겨 놓았습니다』
한국은행과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한화 위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한화 위폐는 지질과 인쇄상태가 조잡했다. 전국을 무대로 대량 유통시킨 전문적인 위폐단도 거의 없었다. 청소년이나 일반인이 장난삼아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위폐의 안전지대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사례로 보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위조범들은 위조 여부를 식별하기 어려운 밤을 유통시간대로 삼았으며 수표사용 경험이 적은 중소도시나 시골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설령 위폐를 발견한다고 해도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93년 서울 용산과 답십리에서 잇달아 발생한 10만원권 위조수표 유통사건의 경우 경찰은 범행에 사용한 복사기 기종만 추정했을 뿐 아직까지 사건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초 적발된 정모(35)씨 등 위조단 4명은 94년 10월 경남 창원의 Y복사인쇄업체에서 일제 컬러복사기를 훔쳤다. 이들은 경남 마산의 한 여관에 아지트를 마련, 10만원권 수표 600여장과 1만원권 지폐 370여장을 복사했다. 수표에 이서할 때 활용키 위해 주민등록증까지 복사해 가명으로 바꿨다. 이들은 『돈이 궁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경찰에 검거됐지만 이 사건으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위폐를 만들어 유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당시 전문가들은 『성능이 뛰어난 최신형 컬러복사기나 컴퓨터 스캐닝을 이용한 레이저 출력방식을 택했다면 위조여부를 식별하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반에 대량 보급돼 있는 고성능 컬러복사기나 컴퓨터, 스캐너, 컬러프린터 등은 언제든지 「위폐 제조기」로 돌변할 수 있다. 컬러복사기는 전국적으로 1,000여대 이상 보급돼 있는데 규정상 경찰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돼있다. 그러나 경찰청이 1년에 한차례, 관할 경찰서가 분기마다 한차례 사용업소의 관리대장을 점검하는 게 고작이다. 복사기 보유업자가 경찰방문시 답변에 불응하거나 거짓말을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밀수입하거나 부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해 사용하는 미등록 복사기에 대해서는 실태조차 파악돼있지 않다.
위폐방지를 위한 관련법규도 문제다. 일반인이 위폐를 신고할 경우 전액 배상해주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위폐 신고자가 고스란히 손해를 봐야 한다.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데 대한 책임 때문이란다.<김성호 기자>김성호>
◎위폐범람 국가/러시아 유통달러 20%가 “가짜”/중선 세뱃돈도 진위 확인… 동남아일대도 ‘주무대’
세계적으로 위폐가 가장 흔한 나라로는 러시아와 중국이 꼽힌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추산하고 있는 달러 위폐 규모는 150억∼200억달러에 달하는 총달러화 유통액의 20%인 30억∼40억달러. 전세계 유통 달러의 위폐 비율이 평균 2.8∼3% 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비율이다. 이는 러시아에서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달러화가 자산보전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마피아가 관여하는 달러화 위조 및 유통은 치안당국이 전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고도의 기밀을 유지하고 있다. 마피아가 향후 20년간 사용할 수있는 위폐를 저장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때문에 러시아에는 위폐감별기가 거의 모든 환전소에 비치돼 있고 대부분의 환전소는 88년 이전에 제조된 달러화는 받지 않는다. 귀퉁이가 조금이라도 찢어진 돈, 글씨가 씌어 있거나 도장이 찍혀 있는 돈은 사양하며 헌돈을 새돈으로 바꾸려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중앙은행은 이같은 규정을 위반한 환전소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까지 내린다.
중국에서는 전문조직의 소행으로 보이는 달러 위폐가 이미 오래전에 등장했고 최근에는 자국화폐인 인민폐의 위조도 성행해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당국이 사상최대의 인민폐 위조사건 관련자를 사형한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해 준다. 인민폐는 다른 나라에서도 환전이 가능한 국제화폐의 하나여서 이같은 현상은 우리에게도 결코 강건너 불이 아니다.
현재 중국의 웬만한 상점은 인민폐 100원권(약 1만원)과 50원권은 반드시 진위를 확인한 후에야 받는다. 또 춘절(설날)에 세뱃돈을 받은 어린이들마저 가짜 돈이 아닌가 하고 그 자리에서 지폐를 불빛에 비춰 볼 정도다. 중국공안당국은 위폐 제조지로 대만을 지목하고 있다. 지난해 후젠(복건)성 등 6개 지역에서 발견된 위조 인민폐 5,300만원(약 53억원) 가운데 84%가 대만에서 제작, 운반된 것으로 드러났다. 위폐는 또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친척방문차 찾아 오는 대만인들에 의해서도 반입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밖에 동남아 일대도 달러 위폐의 주무대이다. 지난해 태국의 휴양지 파타야에서 100달러 위폐가 대량으로 발견됐고 94년에는 마카오에서 북한 대사관 여권을 갖고 있던 2명의 현지인이 대량의 달러 위폐 소지혐의로 체포됐다. 이들 지역은 달러화 선호도가 높은 반면 위폐에 대한 경계심과 감별수준이 낮아 위폐 유통의 온상이 돼 있다.<유성식 기자>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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