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장단·신명과 ‘블루노트’의 만남/그러나 단순동거를 넘어 장르의 혼·변용과 삼투/국악이 누구의 것도 아니듯 재즈도 누구의 것도 아니다/그래서 만남의 장엔 무한의 가능성이…90년대 한국 땅에 전방위적으로 불어닥친 재즈 바람은 「찬란한 소비 바람」이다. 상혼과 결탁한 재즈의 인기몰이에만 관심과 재화가 투입된다. 생성과 창조 과정으로서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안중에 없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비껴서서, 실눈으로 보면 길은 보인다.
지금 일련의 진지한 물밑 작업들이 모색되고 있다. 머잖아 거대한 파동을 몰고 올 그 작업의 한 가운데 재즈라는 절호의 계기가 있다.
재즈가 국악을 만나고 있다. 아니, 국악이 재즈를 만나고 있다. 국악과 재즈의 만남. 동시대를 이야기해야 할 재즈의 의무이면서, 또한 우리 것의 거듭남이다.
「문화 충돌」.
정동극장이 지난 7월부터 벌여 오고 있는 시리즈 공연의 제목이다. 여기에는 우리 시대 문화의 논리가 절묘하게 함축돼 있다.
국악과 재즈의 공존, 이는 이 시대 우리 음악의 지상명령 같다. 장르 혼용과 변용의 「포스트모더니즘」, 이질의 문화가 충돌하고 삼투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내는 생성의 논리다. 충돌의 열기가 뜨겁다.
흔히들 국악인으로 알고 있는 김덕수(44)씨. 그는 그러나 공식적으로 국악인이 아니다. 정악이 아닌 속악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연락처는 한국재즈클럽(KJC)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 스스로 단언한다. 『나는 재즈 뮤지션, 아니면 월드 뮤지션이다』 월드 뮤지션, 「세계적인 음악가」라는 미사여구가 아니다. 「월드 뮤직」이란 세계 곳곳의 음악을 재즈 어법으로 적극 끌어 안는 재즈의 한 장르다.
사당패들의 「뒤집어질 듯한」 장단과 신명을 제대로 꿰뚫어 본 것은 외국의 일류 재즈 뮤지션들이었다. 김덕수네들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유명 재즈 클럽의 공연을 꼭 챙긴다. 현지 뮤지션과의 즉흥 협연(jam session)도 심심찮게 벌인다.
재즈 드러머 김희현(45)씨. 그의 최대의 목표는 서양 드럼 세트로 판소리 장단을 융해시켜 내는 것이다.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등 다양한 우리 장단을 서양 드럼 세트로 표현하는 꿈을 오늘도 스틱에 싣는다.
민속 타악기 주자 박재천(36)씨. 기왕부터 갖고 있던 재즈와의 화합의 꿈이 드디어 지난 11월 발표한 앨범 「몰이·모리」에서 실현됐다. 중모리, 자진모리, 휘몰이 등에서의 「모리」다. 예를 들어 「재징 자진」은 재즈화한 자진모리, 「마이크로 모리」는 중중모리, 「풍」은 진양조, 「류」는 휘몰이 장단이 주조. 단, 스윙한다.
그의 요체는 국악 어법의 확충과 창조. 황병기씨 등의 선구적 작업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악 연주자들이 전통의 방식만 답습하는 데 대한 일종의 「항의」다. 그의 「위기감」은 해외공연이나 강습 기회 등을 통해 견문을 넓히면서 자연스레 배태됐다. 우리가 모르는 새, 국악을 이미 30년대부터 일본·독일이 곶감 빼먹듯 챙겨 갔다고 한다.
95년 앨범 「열정(Passion)」에서 국악과의 접목을 적극 시도했던 재즈 뮤지션 이정식씨는 지금 느긋해졌다. 당시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태평소의 음색을 흉내내는 등 국악적인 소리를 적극 모색했던 그였다. 「열정」의 고비를 넘긴 지금, 그는 말한다. 『양악기를 갖고 국악 흉내 내는 정도로는 곤란하다. 이제 나의 관심은 재즈와 국악이 아니라, 재즈와 우리 음악이다』
농현이나 음을 꺾고 돌리기 등 「우리맛」에다, 한국인 특유의 고향 이미지나 장례 풍습 등 「우리 정서」가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서양 악기로 우리 소리 내기라는 「묘기 대행진」이 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다.
역으로, 국악기만 갖고도 재즈를 연주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일본의 경우, 전통악기만을 갖고도 갖가지 양식의 재즈를 구사하는 것을 그는 인상깊게 보았다.
국악이 아무의 소유가 아니듯, 재즈 역시 그 누구만의 것도 될 수 없다. 정답이란 없는, 예술같기도 하고 염화시중의 미소같기도 한, 그러므로 마침내는 도 같기도 한 세계. 그래서 둘의 진정한 만남은 최대한 열려진 형식일 수 밖에 없다.
국악과 재즈의 상호 삼투는 분명 「시대정신」이다. 이 점은 확실하다.
그 현장, 그 열기를 똑똑히 확인하고자 하는 요구는 높아간다. 13일 하오 7시30분 재즈 클럽 「야누스」에서 벌어지는 「강태환-박재천 듀오 콘서트」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공연 시간이 얼마가 될 지, 어떤 선율이 연주될 지 아무도 모른다. 뮤지션들 자신도.
복제와 모방의 이 시대, 「절대 찰나」는 그렇게 존재하므로 더욱 값지다.
「재즈와 국악, 국악과 재즈」. 후세의 예리한 예술사학자라면, 90년대편의 제목을 이렇게 달 지도 모를 일 아닌가.
◎강태환의 음악세계/색소폰서 나오는 대금소리/프리재즈를 능가하는 ‘프리뮤직’
알토 색소폰 주자 강태환(52)씨의 음악은 「완벽한 컬트」다. 절대적 열광과 극단적 무관심이 당당히 공존한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만큼이나 컬트적인 것이 또 있을까.
그를 알아 보는 쪽은 언제나 바다 바깥. 달인끼리는 통하는 법인가.
색소폰의 존 존(John Zorn), 피아노의 사토 마사히코 등 프리 재즈의 세계적 거봉들은 그와 즉흥 협연한 뒤, 이구동성. 『완벽한 즉흥이었다. 내 생애 처음이다』
20∼30분 가량의 작품이 모두 한 호흡에서 이뤄져, 단 한 번도 끊기지 않는다. 이른바 순환호흡(circulation breath) 주법이다. 그의 알토 색소폰 소리를 묘사하려면 음악적 표현이나 어설픈 미학적 표현보다, 즉물적 표현에 기대는 편이 유효하다.
색소폰이 아니라 차라리 대금 소리다. 바싹 마른 갈대밭을 헤집는 허탈한 바람 소리라는 표현은 어떨까.
언어의 사슬을 비웃는 그의 「소리」.
프리 재즈라는 장르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 재즈의 한 형식일 따름이다. 「강태환 소리」의 본질을 포착해 낼 수 없다. 그의 장르는 「프리 뮤직(Free Music)」이다. 프리 재즈를 개념적으로 능가하고 있다. 계기는 분명 우리 소리이다.
재즈와 국악의 만남을 평생 화두로 걸머져 온 그의 경험은 이렇게 압축된다. 『서양은 맑은 자연 배음의 평균율 음악이고, 국악은 뒷소리 즉 농현음을 중시한다. 서양의 박자는 수학적으로 쪼개지지만 우리 박자는 미분되지 않는 「감성적 박자」여서 재즈가 우리 소리와 만나는 통로는 정악 쪽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소리와 재즈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재즈와 속악 사이 어디쯤이다』
「아시아의 정신(Asian Spirit)」.
그는 최근작의 이름을 이렇게 붙여 두었다. 한·일의 최정상급 프리 재즈 뮤지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귀한 기록물이다. 이미 서로의 음악, 아니 심중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강태환씨와 사토 마사히코가 다시 모여 염화시중의 미소를 교환했다.
그의 재즈, 아니 프리 뮤직은 국악을 관통하더니 마침내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장병욱 기자>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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