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만드는 독서 붐/출판계엔 단비지만 문학은 ‘팬시’가 아니다90년대, 한편에서는 영상시대를 구가하는 떠들썩한 축포 소리가, 다른 한편에서는 문자문화 시대의 몰락을 예감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바야흐로 영상문화의 막강 위력 앞에서 문자문화, 특히 문학이 누려온 권위의 실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언제나 불화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상매체를 위시한 매스미디어는 적극적 마케팅과 그에 대한 독자들의 맹목적이다시피 한 호응을 등에 업고 베스트셀러를 「제조」해 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영상매체의 직·간접 지원에 힘입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든 책들이 늘고 있다. 월북작가 홍명희의 「임꺽정」과 문단의 중진 박완서씨의 소설 「미망」이 대표적. 「임꺽정」과 「미망」은 각각 그 제목을 단 SBS 창사 특별기획 드라마와 MBC 수목 드라마 방영 이후 대형서점에서 독립코너를 설치할 만큼 많이 팔려나가고 있다. 특히 「미망」은 드라마화 바람을 타고 출간 6년이 지나 베스트셀러 10위권에까지 진출했다.
더욱이 이 작품은 중견 출판사인 문학사상사와 세계사에서 중복 출판했다. 문학사상사는 드라마 방영과 함께 표지갈이를 한 새 판을 내놓았고, 박완서 전집을 내고 있는 세계사도 출간 일자를 드라마 방영에 맞춰 조정했다는 후문이다. 바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매스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프로그램에 나온 어느 책을 달라는 손님들이 꽤 많아요. 그것도 책소개 프로그램이 아니라 막연히 어떤 드라마에서 어떤 연예인이 보던 책을 찾아달라는 사람도 있고요』 교보문고 소설매장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심지어 드라마나 영화만 보고 나오지도 않은 책을 찾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인다.
이런 현상을 두고 만성적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계에 그나마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는 일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는 출판인들도 많다.
그러나 『한 문학작품이 그 자체의 내용과 질에 의해 판단되는 게 아니라 「아무개 헤어스타일」이니 「아무개 패션」처럼 대중매체에 의해 조장된 유행의 논리에 휩쓸린다면 이는 결국 문학의 팬시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한 중견 출판인의 조심스런 비판에 더욱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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