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로마에서 열린 세계식량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그기간 내내 필자는 식량안보에 대한 상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식량에 대한 논의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필요한 조치를 더이상 미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90년대 들어 세계는 아동·환경·인권·인구·사회개발 등 주요 이슈에 대해 범세계적인 회의를 잇따라 열고 대책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삶의 기본조건인 먹거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인식이 이번의 식량정상회의를 이끌어 냈으며 150여개국에서 모인 정치지도자들로 하여금 앞으로 20년이내에 8억명의 기아인구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역사적인 목표를 설정하게 했다.
문제는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이다. 식량수출국과 수입국간의 시각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식량수출국들은 무역자유화를 확대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식량수입국들과 세계의 비정부기구(NGO)들은 각국이 적절한 농업생산기반을 유지하고 기초식량의 자급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무역자유화에 우선하는 과제라는 입장이다.
결국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로마선언문」과 「행동계획」은 양쪽의 의견을 적절히 조화하는 선에서 매듭지어졌으나 농업과 식량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견해는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가 않다. 우리가 자주 입에 올리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란 국경없는 자유무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날의 냉전체제에서는 강대국의 이념적·정치적 이해관계가 경제적 이익보다 앞섰기 때문에 약소국의 입장을 어느정도 봐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서냉전이 끝난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각나라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국가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농업부문에까지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는 경쟁력있는 자기네 농업을 보호하고 정치적으로는 식량수입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이다.
즉 강대국으로서는 식량의 무기화요, 약소국의입장에서는 식량안보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기초식량을 자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루 세끼중 두끼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고서는 진정한 선진국, 명실상부한 세계일류국가가 되기 어렵다.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에서 지난해 발생한 고베(신호)지진 때 불타고 있는 폐허를 헤매며 이재민들이 애타게 원했던 것은 자동차도 TV도 컴퓨터도 아닌 한덩어리의 주먹밥이었다. 식량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래서 식량문제만은 자유무역의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나아가 통일을 꿈꾸는 우리국민은 이같은 먹거리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농업을 살리고 식량자급을 이루는데 합심하여야 한다. 농업이 위축되고 농민이 농촌을 떠나면 식량은 물론 자연생태계의 파괴 등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도 함께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면 도시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농업을 유지시키는 것 보다 7배나 더 든다.
이처럼 농업과 식량의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농민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이 달린 것이요 국가존립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식량안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우리 모두가 농업을 지키는데 발벗고 나서야 히겠다. 식량안보-그것은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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