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 자취 감춘지 10여년/‘다양하고 알찬 내용’ 앞세워 다시 대중을 파고 든다문고본을 아십니까.
기억에도 아슴푸레한 문고판 책들.
국내외 문학작품들을 함께 아우르던 삼중당문고, 박영문고로 읽던 파스칼의 「빵세」와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을유문고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란색 표지가 인상적이던 삼성문화문고의 「이데올로기의 종언」. 소설가 고 이병주씨가 자주 회상하곤 했던 일본의 이와나미(암파) 문고까지.
한때 서가를 장식했던 이런 문고판 책들이 우리 주위에서 자취를 감춘 것도 10여년이 훨씬 지난듯 하다. 단행본 출판이 국내 출판의 당연한 주류를 이루면서, 싼 값에 지식에 목말라 하던 젊은이들의 갈증을 채워주던 문고본들이 어느덧 사라져버린 것.
문학과 지성사가 새로이 발간하는 문고 시리즈 「문지 스펙트럼」은 이 「문고적 권위」의 복권을 꾀하고 있는 기획이다. 『변화하는 문화환경에서 기존에 문학과 지성사가 추구하던 바를 대중화하고,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독서물을 개발한다』는 취지가 그렇다.
손바닥에 잡히는 자그마한 크기에 250페이지 내외 분량의 책에 담긴 글들은 그래서 두터운 단행본의 내용 못지 않게 알차다. 우선 영역을 일곱 갈래로 나누었다. 한국 문학선, 외국 문학선, 세계의 산문, 문화 마당, 우리 시대의 지성, 지식의 초점, 세계의 고전 사상이다. 각 영역별로 책임 기획위원을 두고 있다. 특히 저자들이 기존에 발표한 글들 중 스스로 추려 모은 선집의 성격이 많은데, 책 말미에는 원전을 분명히 밝혀 도움을 준다.
이번에 일차로 출간된 것들은 한국 문학에서는 황순원 소설선 「별」, 정현종 시선 「이슬」, 이성복 시선 「정든 유곽에서」, 윤후명 소설선 「귤」이다. 우리 문학의 대표적 작품들을 계속 발간해 나갈 것이라는 출판사측의 설명.
문화 마당 분야에서는 김현의 「한국 문학의 위상」, 김정룡의 「우리 영화의 미학- 한국 영화감독론」과 성기완의 「재즈를 찾아서」가 나왔고,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를 보는 눈」, 김재인이 번역한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 김병익의 「지식인됨의 괴로움」이 우리 시대의 지성 분야로 묶였다.
출판사측은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기획으로 기존의 문고 시리즈와는 변별성을 갖게 해 「문고 열풍」을 일으키겠다』고 장담한다. 지켜볼 일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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