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도시 정선·태백에 골프장 스키장 호텔 등 복합관광레저단지 건설/그 청사진은 나왔지만 교통망 확충 예산확보 등 넘어야할 산도 많다/과연 그 산을 넘고 넘어 장밋빛 꿈을 이룰 것인가녹슨 레일위에 버려진 탄차, 검은 구멍이 뻐끔히 뚫린 채 바람만 썰렁한 갱도 입구, 폐광에서 개울로 흘러 드는 황토색·회색 폐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강원도 폐광지역이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관광레저단지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할 것인가.
태백 정선 등 폐광지역 주민들에게 최초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와 스키장, 골프장, 호텔 등을 건설하는 개발계획은 『물러설 수 없는 선택』이다. 그래서 사업주체인 강원도나 지역주민 누구도 감히 실패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뜻 성공을 장담하는 사람도 드물다. 실로 거대한 모험이라면 모험인 셈이다.
이 지역은 스키장과 골프장이 들어서기에 더없이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관광객 흡인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과의 교통망 확충이 불분명한 것이 무엇보다 큰 걸림돌이다. 현재의 접근로를 확장해도 대규모 레저단지 이용자를 다 소화해 내기 어렵다.
개발계획을 입안한 강원개발연구원은 태백 정선 등이 개발되면 2002년에는 관광객이 현재의 4배인 1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주요접근로인 38번 국도를 4차선화해도 늘어날 관광객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제공항 확보와 도로망 확충, 철도 고속화 작업이 필수지만 현재까지는 38번 국도의 4차선 확장계획만이 눈앞에 있을 뿐이다. 강원개발연구원의 권기현 책임연구원은 『험준한 산악지역이어서 도로망 확충이 쉽지 않다』며 『강릉공항과 양양에 건설될 신공항 등과 연계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곳에 최초로 내국인 출입 카지노 설치가 허용된 것도 카지노 특유의 흡인력으로 교통불편을 보완하자는 취지였다. 카지노는 틀림없이 내·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강원도의회 성희직 의원(정선)은 게임테이블이 150개 설치될 경우 입장수입만 연간 35억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순수 관광객의 30%가 카지노 이용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만 봐도 카지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내국인이 가세하면 수익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주민들은 최소한 연간 100억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영업시작후 5년까지 수익금의 75%, 5년부터 10년까지는 50%를 지역개발 기금으로 주민들에 게 환원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 경제부흥의 일등공신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카지노와 관련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고한읍 번영회 박효무 회장은 『지역개발을 위해 카지노를 만드는데도 외부에서는 마치 카지노를 위해 레저단지를 조성하는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카지노가 들어서도 특별법에 따라 한번에 거는 액수를 과다하게 제한하면 외국 카지노나 기존 국내 카지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명지대 이태희 교수(관광학)는 『카지노만 있으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게임테이블에 앉아서 카지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판돈을 모두 딸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기업이 49% 이상 지분을 소유할 수 없고 운영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점도 있다.
폐광지역 개발의 대명제는 지역경제 회생이다. 강원개발연구원에 따르면 96년 5,200여명 수준인 관광산업 일자리가 2001년에는 1만8,000여명, 2010년에는 6만여명으로 늘어난다. 폐광지역의 관광수입도 96년 782억원에서 2001년 2,723억원, 2010년 8,945억원으로 수직상승한다. 세수 역시 96년 21억원에서 2010년 245억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이같은 예측은 개발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개발이익이 그대로 지역에 환원된다는 전제를 깐 것이다.
고한읍 고토일 주민 이봉모(42)씨는 『이곳 주민의 80∼90%는 광부일을 하기 위해 들어온 외지인』이라며 『따라서 대다수 주민은 개발이익이나 개발효과와는 무관하고 당장 필요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한 일자리』라고 말했다. 결국 폐광지역에 땅을 가진 일부 원주민과 개발에 참여하는 기업만 살찌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주민들이 주민주식회사를 만들어 직접 개발사업자로 나서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주식회사는 재원이 부족해 막대한 재원 조달을 위해서는 민간기업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대규모 레저관광단지에 걸맞는 사회간접자본(SOC)과 기반시설에 대한 정부지원이 제대로 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타지역도 있는데 강원 폐광지역에 예산지원을 편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발과정에서 나타날 주민간 마찰도 문제다.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주민주식회사와 참여치 못하는 인근 주민과의 마찰도 있고 개발권역에 포함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사이의 갈등도 예상된다.
건교부는 이달중 개발계획을 승인할 예정이나 고원관광단지 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폐광지역 개발은 주민단결의 결실/“지역경제 살리자” 추진위 결성 본격 투쟁/환경단체 반대도 ‘친화적 개발’ 설득
강원도 폐광지역 개발계획을 이끌어 낸 원동력은 바로 주민들의 단결된 힘이었다.
89년부터 실시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은 사북·고한의 지역경제를 극도로 피폐시켰다. 정부는 값싼 외국산 석탄을 수입하고 톤당 2만3,000원의 감산지원금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탄광수를 줄여 나갔다. 88년 27개였던 이 지역 탄광은 2개로 줄었고 인구도 6만4,000명에서 2만2,000명으로 급감했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제출한 대정부 건의안과 지역개발안이 잇따라 거부되자 주민들은 「사북·고한지역 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박효무·심을보)를 결성,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다. 위원회의 첫 작품은 94년 12월 전격적으로 핵폐기물 처리장 수용을 제안한 것. 이 제안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한 위원회는 95년 2월27일 4,000여명이 참가한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주민들은 「원칙과 대책없이 석탄산업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정부」에 대한 투쟁을 천명했다.
주민들의 요구는 ▲폐광지역의 개발촉진지구 지정 ▲석탄감산정책 중단 ▲폐광지역 개발특별법 제정 등 3개항으로 압축됐다. 지자제선거와 자녀등교를 전면 거부하는 한편 정당원 이장단 소방대원이 연쇄사퇴하는 등 파상공세를 계속했다.
투쟁 5일째인 3월3일 통상산업부 차관이 정부대표로 사북지역을 방문했다. 2시간에 걸친 협상결과 양측대표는 ▲5년간 석탄생산량을 94년수준에서 30만톤 줄인 170만톤으로 유지하고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며 ▲대체산업 투자비를 장기저리로 융자한다는 등 5개항에 전격합의했다. 이때 내국인 출입 카지노 설치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규제가 산더미였고 환경단체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주민들은 환경단체를 초청, 지역현실을 눈으로 확인토록 했다. 결국 환경단체들도 「환경친화적 개발」을 약속받고 반대를 철회했다.
당시 공동위원장이었던 고한읍 번영회 박효무 회장은 『이런 어려움을 거친 개발계획인 만큼 주민들의 단결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이진동·이상연 기자>이진동·이상연>
□개발사업 개요
△기간=1997∼2005년
△면적=태백 정선 영월 삼척 등 4개 시·군에 걸쳐 436.9㎢
△소요자금=약 2조5,400억원(국고 7,264억원 지방비 344억원 민간자본 1조7,762억원)
△사업계획안=스키장 8개(슬로프 109면), 골프장 4개(99홀), 호텔 6개(1,750실·카지노 1개), 콘도미니엄 8개(4,000실)
△예상관광객수=96년 38만5,000명(추정)에서 매년 15.2%씩 증가, 2010년에 40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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