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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갈길이 멀다/이봉주 마라토너(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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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갈길이 멀다/이봉주 마라토너(아침을 열며)

입력
1996.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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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뭘하고 있을까. 회사원이 됐거나 아버지처럼 고향 천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을까. 뜀박질 외에는 생각해본 게 없어선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요즘 나는 과분할 만큼 주목받고 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을 때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 길거리의 꼬마들도 모두 알아본다. 1등이 이렇게 좋은 줄 미처 몰랐다. 완전히 딴 세상에서 사는 기분이다.

물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힘들 땐 「왜 이렇게 힘든 운동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나와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 나를 응원하고 있고, 내가 잘 뜀으로써 그 분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절로 솟는다. 달리기를 직업으로 삼은 건 참 다행한 일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육상과 만났다. 우리 집은 충남 천안시내에서 한참 들어가는 벽촌에 있고, 학교는 15리(6㎞)이상 떨어져 있었다. 자전거가 없어 학교까지 걷거나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20∼30리 정도 달리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천안 천성중 3학년때 체육선생님의 눈에 들어 육상부에 들어갔다. 육상부 생활은 신이 났다. 구령에 맞춰 달리는 것도 좋았고 이런저런 대회에 나가는게 너무나 즐거웠다.

내가 육상을 한다고 하니까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큰형도 『레슬링을 하겠다』고 우기다가 가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고집을 부리자 「막둥이마저 가출할 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지 얼마 안가 두손을 들고 마셨다.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사실 나는 신체적인 조건도 별로 좋지 않다. 특히 짝발이라 고생이 심했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5㎜ 커 운동화가 맞는게 없었다. 헐렁한 신발은 안되기 때문에 오른발(250㎜)에 맞는 신발을 사 신으면 왼발에 피멍이 들기 일쑤였다. 물론 지금은 특수제작한 운동화를 신지만 2년전까지만 해도 힘들었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왜 그리 힘든 운동을 하느냐』고 묻곤한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때마다 『그냥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하는거죠』라고 대답한다. 마라톤은 힘든 운동이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1등이나 꼴찌나 42.195km를 완주하고 나면 곧 죽을 것 같다가도 다시 뛰라면 더 잘 달릴 것 같은 생각이 드는게 마라톤이다. 나는 끝없이 도전할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마라톤 같이 힘든 운동은 싫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한국에는 마라토너가 50명가량 밖에 안되고, 그것도 이름만 걸어놓은 선수가 대부분이다. 우리 코오롱팀에도 선수가 6명밖에 안된다. 이웃 일본은 실업팀이 80개가 넘고 마라톤 인기가 대단하다. 이대로라면 한국마라톤이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마라톤은 도전해 볼만한 운동이다. 몇번씩이나 포기하고 싶은 고비를 넘기고 결승점에 도달할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그동안 15차례 완주하면서 「보스턴마라톤 3연패」의 엔데티, 세계기록(2시간 6분50초)보유자 딘사모 등 세계 톱마라토너를 모두 꺾었다. 평생 한번 참가하기도 힘든 올림픽서도 입상해봤다.

하지만 당분간은 긴장을 풀지 않을 생각이다. 결혼을 하루 앞두고도 경부역전대회에 참가해 소구우승을 차지했던 백승도(한전) 선배 처럼 할일은 하는 부지런한 마라토너가 되고 싶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나는 마라톤선수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그후에도 힘이 닿는 한 계속 달릴 각오다.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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