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연주가 대세 장악20세기말 재즈의 메인스트림 「재즈 고전주의(classicism)」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는 신간 재즈 관련 도서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문자 정보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 음반들이 차차 소개되고 있다. 리더격의 뮤지션이 내한,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난 11월20일 세종문화회관 허비 행콕 콰르텟의 내한 공연. 80년대 이후, 하몬드 오르갠과 신서사이저 등 각종 전자 악기의 수풀을 종횡으로 헤쳐 오던 행콕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180도 달랐다. 피아노, 색소폰, 베이스, 드럼으로 이뤄진 교과서적인 완전 어쿠스틱 재즈 콰르텟으로 1시간40분의 꽉찬 감동을 선사했다. 옛 형식에 실린 새로운 감동, 그날 행콕이 펼친 음악이었다.
「고전주의」란 정통 재즈가 남긴 음악적 유산들을 올곧게 계승하자는 것. 정통 재즈란 밥(bop)의 어법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재즈다. 무드 재즈, 발라드 재즈, 퓨전 재즈 등 「재즈」라는 이름을 달고 흔히 유통되는 음악과는 정면에서 배치된다.
고전주의의 어쿠스틱 물결은 또 음반으로 밀려오고 있다. 당연히 행콕이 공연 후 떨구고 간 새 앨범 「뉴 스탠더드」가 그 선두. 「새 시대의 표준」이라는 자신만만한 제목을 달고 있다. 밥 제임스의 변신 역시 그에 못지 않다. 「택시」나 「안젤라」 등 달콤한 퓨전 재즈로 왕년을 풍미했던 제임스. 그러나 신작 「똑바로 곧장(Straight Up)」에서는 그같은 색채를 완전 일신하고 있다. 똑바로 곧장,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답은 역시 어쿠스틱이다. 전자 음향을 일절 거부한다. 앨범 표지에서부터 그 의지가 선명하다. 재즈 피아노 트리오, 즉 피아노+베이스+드럼이 앨범 표지에 가득 차 있다. 곧 어쿠스틱 재즈의 상징이다. 「앰브로시아」, 「잃어버린 4월」 등 신작과 팻 매스니의 「제임스」 등 알려진 곡들이 날려갈 듯 가뿐한 피아노 트리오에 실렸다.
기타리스트 존 매클러플린도 신작 「약속」에서 어쿠스틱 어법을 적극 탐색한다. 특히 「엘 시에고」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들만의 향연이 인상적이다. 플라멩코 기타(파코 드 루치아), 퓨전 기타(알 디 메올라)의 달인들과 펼치는 어쿠스틱 기타 트리오 곡이다.
고전주의가 거장들의 몫일 수 만은 없다. 최근 출반된 신예 재즈 기타리스트 노먼 브라운의 신보 「이제부턴 좋은 날들이」 역시 재즈의 위대한 전통을 따르고 있다.
고전주의란 취향의 문제가 아닌, 재즈의 「시대정신」이다. 이 음반들은 자신의 현재 재즈 지수를 확인시켜 줄 체크리스트로서도 쓰일 수 있다. 바로 곁에, 있으므로.<장병욱 기자>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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