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 소위 수준높은 의식과 문화를 자랑하는 유럽사회는 우리와 구별되는 몇가지 습관이 있다.그들은 산책을 끔찍이 즐긴다. 산책과 사색은 일상적인 습관처럼 여겨지는데, 산책은 커녕 아파트 안에서 맨손체조도 잘 안하는, 그래서 국민 전체가 비만증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와 부끄러운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런 부끄러움은 시민들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의식의 결핍현상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만큼 유럽사회는 도로가 잘 닦여있고 우중충한 기후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기오염이 없다.
우리 국민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관객 수준이 낮다는 등의 자기비하적인 말들을 자주 한다. 사실 유럽의 서점이나 전시장 공연장은 학생 뿐만 아니라 중·노년층과 가족동반 대열로 가득찬다. 이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다. 유럽의 텔레비전은 정말 볼거리가 별로 없다.
단조로운 뉴스, 딱딱한 시사토론과 교양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전문화한 채널 외에 일일연속극 같은 것은 아예 제작되지 않는다. 드라마 제작편수로 치면 우리가 세계 최대 드라마 제작 국가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이다. 시청자들이 TV화면의 포로가 되지 않으니까 그만큼 책을 읽고 전시장과 공연장을 찾을 생각을 하게 된다. 경제가 어려운 나라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는 800석 이상의 대극장만 70여개가 넘고, 극장마다 관객들로 가득 찬다. 이게 웬 문화민족인가 생각했더니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에는 아예 TV드라마가 제작되지 않는다.
약간 비약적인 논리를 폈지만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소비와 가족 이기주의, 인문과학과 순수예술의 전반적인 침체, 중산층 문화부재가 문제시되고 있다. 이 문제는 구호적인 독서운동이나 문학의 해 선정 등 형식적 정책으로 해결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갖가지 시간때우기식 볼거리를 제공받고 있는 시민들의 의식 결핍 탓으로 돌려서도 안된다. 결국 사회발전과정의 불균형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전반적으로 인간의 본질적 문제보다 현실적 문제 해결에 급급했던 개발국가의 부작용일 것이고, 지금부터라도 그 극복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송매체부터 지식과 오락의 균형감각을 통해 중산층 문화를 선도해 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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