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란 허울좋은 이름으로 직장에서 물러난 고개숙인 남자들이 늘고 있다. 한참 일할 나이에 실업자가 돼버린 이들은 가족들 보기가 민망해 점차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일 것이다. 만일 각 기업체가 실업수당이란 마음 씀씀이로 더 얹어 준 퇴직금마저 없었다면 이들의 설 자리는 더욱 없었을 것이다.그나마 법정퇴직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정부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을 보완하고 법정퇴직금은 2000년 이후 취업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각기업의 사정에 따라 지급하는 임의퇴직금제로 전환하려다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속엔 국가복지로 이를 대체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퇴직금과 종신고용제는 전형적인 기업복지제도다. 기업이 국가를 대신하는 복지의 성격이 강하다. 국가복지가 미비한 한국이 OECD에 가입할 수 있을 만큼 된 것도 이러한 기업복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마저 존폐위기에 처한데다 전경련회장이 5년간 임금동결을 건의하고 나서 월급쟁이들의 마음은 더욱 스산해지고 있다.
정년퇴직해도 앞날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물며 명예퇴직을 한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나이들면 싫든 좋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자인생」에 삶을 맡겨야 한다. 대부분 저축 연금과 퇴직금, 그동안 다져온 대인관계 및 자녀들의 효도란 「이자」에 의지해 살아 가게 마련이다.
바로 이 이자인생이 요즘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 고령화사회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퇴직후의 인생도 그만큼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경기 등으로 후반인생의 바탕이 될 각종 「원금」의 가치 등이 애매해지고 있는 것이다. 퇴직금은 종신고용제와 함께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그나마 요즘 이를 노리는 사기꾼들이 들끓고 있다.
여유있는 노후를 위해 여유없는 생활을 하면서 모아온 저축도 그 해결책이 못되고 있다. 고물가 저금리시대를 앞두고 그 이자의 효력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퇴직금을 포함한 저축은 자녀와 함께 노후를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이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따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35.4%(94년)란 높은 저축률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고 또 하나의 기둥인 자녀들에게 효도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자녀들의 교육에 열을 올리고 투자한 것도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인간적인 측면이 있었다.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이기주의가 그 폭을 넓혀감에 따라 「이자」를 받을 가능성이 멀어지고 있다. 오히려 자녀들이 부모의 도움으로 인생을 쉽게 시작하려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가복지가 그 무게를 더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복지는 세금 등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는 이의 반대급부로 지금까지 개인이 해온 자녀교육 저축 등의 노후준비를 대신 해준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국민들은 그동안 납부한 세금 등의 「이자」로 노후를 즐기게 되는 셈이다. 스웨덴이 좋은 예다.
이러한 이자인생은 현재로선 훗날의 이야기다. 현재 시급한 것은 위험수위에 육박한 개인이 준비한 이자인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일이다. 젊은 명퇴자까지 이에 가세함으로써 사태는 심각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 등에 노후생활을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령화사회를 맞으면서 안정된 노후생활을 확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뚜렷한 준비도 없이 법정퇴직금을 없애겠다는 말부터 흘린 정부의 비전이 듣고 싶다. 열심히 일하고 노년에 그 「이자」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전망이 없다. 장수가 부담이 되지 않는 안정된 「이자인생」이야말로 선진국의 상징이라고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