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같이 형상화한 역사 「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 연우무대가 윤영선 작·채승훈 연출로 공연 중인 작품이다. 그런데 제목만 보고는 도무지 그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팔뜨기 선문답」에 이어 두 번째 희곡을 내놓은 윤영선의 또다른 선문답인가? 그렇다. 부제를 「사팔뜨기 선문답 Ⅱ」로 붙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 역시 「정상의 눈보다 훨씬 정확히 세상을 보는 사팔뜨기」의 역설과 「황당하지만 지고의 진리」인 이른바 「선문답」을 시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과거 서양문학의 여러 인물이 현재 우리의 인물과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 중심축은 오레스테스와 햄릿과 나이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를 잃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즉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와 그 정부에 의해, 햄릿은 어머니와 숙부에 의해, 나는 암세포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다. 그러나 복수의 양태는 사뭇 다르다. 단호히 원수를 처단하는 오레스테스와 달리, 햄릿은 회의와 주저 끝에 자신의 목숨과 복수를 교환하며, 나는 암세포도 아버지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감히 복수의 시도조차 못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의 핵심이 있다. 즉 아버지를 죽이는 어머니, 그래서 어머니를 죽이는 아들, 또한 같은 세포끼리 죽고 죽이는 암이라는 병. 윤영선은 그것을 우리 역사의 축도로 파악하여 제시한다. 더욱이 그것은 복수 내지 치료조차 불가능한 암담한 모습이다. 채승훈은 이 내용을 몽환적 분위기 속에 담았다. 마치 온갖 사물과 사건들이 생시의 논리와 전혀 다른 양태로 뒤얽혀 있는 「악몽」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별별 잡동사니를 다 긁어모은 한규용의 무대장치는 한 눈에 그것이 꿈의 형상화임을 드러냈다. 시·공을 초월해 여러 인물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연기도 다분히 몽환적이었다.
그러나 팸플릿의 도움없이 작품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듯 하다. 결국 그 고민이 팸플릿에 나타난 친절의 원인일 텐데, 윤영선의 분명 의미있는 발상이 공연에서도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 점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다.<오세곤 연극평론가·가야대 교수>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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