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개추의 정부안이 마련되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노개위 공익안을 대폭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비판은 면치 못할 것 같다. 법 개정의 필요성은 노도 사도 다 함께 느껴왔지만 각각 다른 이유에서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노조가 요구한 정치활동과 제3자개입에 관해서는 잘 수용되었으나 복수노조 허용은 상급단체에만 한하기로 하고 2002년에 가서 단위사업장에도 복수노조를 허용키로 한 것이다.얼른 보기에는 복수노조 허용에 일부만을 수용한 것 같으나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민노총은 지금의 노조법 3조 5항과 관계없이 이미 사실상의 인정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 상급단체가 직접적으로 단체교섭을 하는 주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더 큰 문제는 단위사업장 내에 노노분쟁을 막기 위해 복수노조 허용을 유보한 것이 오히려 한국노총과 민노총으로 하여금 물밑에서 교섭권 쟁탈전을 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노조를 배타적 교섭권자로 인정한다는 경과규정과 함께 교섭창구 일원화를 전제한 복수노조를 허용할 경우 노노싸움을 막을 수 있고, 과반수의 지지세력이 없는한 노조간판이 있다 하더라도 교섭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 이 제도이다. 이런 것을 왜 경영자들이 마다하는 지 알 수가 없다. 경영측이 요구한 것들 중 노개추가 받아들인 것은 첫째 정리해고를 더 쉽게 한 것과 둘째 월단위 주 56시간 한도의 변형근로제를 허용하는 것이다.
셋째 대체노동을 더 넓게 허용하여 유니온숍의 경우 외부근로자에 대해서까지도 일시적 채용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의 경제적 파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항이기 때문에 노조의 반발은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시한부로 인정하고 사용자가 지급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차라리 외국의 경우처럼 노동조합이 일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임금청구하는 것을 조합의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옳지, 구태여 사용자에게 얽맬 것은 아니라고 본다. 보다 구체적인 경과조치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법개정과 동시에 그 시점에서 이미 기업이 지불하고 있는 전임자 급료총액을 조합원에게 등분해서 지급하도록 하고 향후 5년동안은 조합원이 받은 액수를 조합비로 조합에 납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합원은 조합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자신들이 부담한다는 원칙을 세우게 되고 더 이상 전임자에 대한 어용성 시비를 없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도 노조전임자를 어용화했다는 누명을 안 살 뿐아니라 전임자 급여지급을 중지함으로써 노조와해를 꾀한다거나 고임금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노사개혁을 한 것이라는 오해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경영측이 그렇게도 갈구해 오던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법제화한 것이다. 그 외에도 직권중재대상이 되는 공익사업의 범위를 더 넓히고 파견근로를 제2기에 가서 법제화하기로 한 것 등이 대체로 경영측 요구를 받아들인 사항인데 이들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점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안의 무게중심이 경영쪽에 편중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교원의 광역단체별 복수허용을 99년부터 실시하겠다고 했고,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을 4인이하까지 확대하겠다는 점을 내놓았다. 그러나 혹시 이것이 노조를 의식한 나머지 영세사업자들을 희생양으로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 대상이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만 고용한 가구일 수도 있는데 감독과 관리를 할 수도 없는 이러한 영세사업자들을 근기법 적용대상에 넣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묻고 싶다. 법은 타협성도 중요하지만 실효성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과연 헌법개정보다 더 어려운 노동법개정을 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정당은 표밭을 의식한 나머지 노사관계에 있어 그 어느 편에도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다. 선진국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경쟁력을 회복한 데는 정당들이 뚜렷한 정강을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서 과감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당들에게 이같은 것을 구하는 것은 나무에 가서 고기를 잡으려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때문에 노·경총 당사자들은 극한적인 대립이 몰고 올 파국을 막기 위해 국회로 법안이 가기 전에 대타협을 다시 한 번 시도해 주기 바란다. 노동시장은 탄력화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기본권도 보호돼야 한다. 교섭창구 일원화만 한다면 노노싸움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부탁하는 것이다.<경희대 교수·노동경제학>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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