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제네바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교육장관회의에 참석하고, 그 길로 사흘간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초행이었지만 평소 관심이 많던 나라라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배웠고 감동적인 체험도 많이 했다. 그 중 영재교육기관인 「예술·과학아카데미」를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다.이름에 예술과 과학이 함께 붙어 있는 것부터 이상했다. 학교책임자 말로는 이 학교에는 다양한 영역의 영재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데, 과학과 예술분야가 두드러진다는 것이었다. 전공별로 심화교육을 하기보다는 여러 학문분야가 협동해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이른바 학제적 접근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전공의 벽을 넘어 열린 대화를 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관점과 이론, 실증적 방법이 동원된다. 교사는 가르치기보다 주로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은 답을 찾아 구도자처럼 탐구를 계속한다. 그러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창의력을 키운다. 교육과정은 주입식 교육이나 상투적 정답풀이 대신에 끝없는 토론과 논박, 새로운 착상과 파격, 실험정신으로 점철된다. 이들이 중시하는 것은 번뜩이는 천재성보다 상호협력과 진지한 탐구정신, 창의성 개발이었다.
더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영재의 충원과정이나 교육과정, 일상생활 속에서 「엘리트주의」적 요소가 배제된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영재를 전국에서 고르게 모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 시험을 통해 일상적인 방식으로 뽑는다면 상류계층 자제들에게 유리할 것이므로, 장기간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하고 자칫 소외되기 쉬운 농촌 및 소수민족출신 영재들의 충원을 위해 이른바 「발굴프로젝트」를 통해 전국적으로 찾아 나선다. 따라서 이 영재학교에는 계층적, 지역적으로 전국의 학생이 비교적 고르게 대표되어 있다.
매주 몇 시간씩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시간이 있어 졸업때까지 누구나 한 주도 빼지 않고 가장 그늘진 곳을 찾아 헌신적 봉사를 하게 된다. 말하자면 모든 학생들에게 봉사를 생활화, 내면화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학교이지만, 건물 설비 교실 기숙사 어디에도 고급스런 면모가 전혀 없이 소박하고 검약한 분위기가 맴돈다. 실험실 벽에는 갖가지 실험기구의 값이 하나하나 매겨져 있어 기구를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영재로서의 자부심이나 특권의식 대신에, 그들의 뛰어난 재주를 이 나라의 전국민, 그리고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하도록 가르친다. 그들의 창의적, 지적 자산은 전국민의 것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따라서 「영재성」은 봉사자의 표지일뿐, 세속적 특권을 향한 사다리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영재학교는 특수층을 위한 특권학교가 될 개연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영재학교는 흔히 일류, 엘리트, 경쟁력 등의 개념과 연계되며, 「영재성」은 사회적으로 특별하게 보상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스라엘의 영재학교는 파격적이다. 이스라엘의 영재들은 그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불태워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일꾼들이다. 키부츠라는 자치공동체를 만들어낸 이스라엘사회답다.
나는 장관이 된 후, 교육의 목표를 「창의적이며, 인간다운 인간을 키우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이 세상을 보다 인간화하기 위하여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인간」을 양성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그런데 바로 그 곳에서 가장 전형을 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너무 이상주의적이 아닌가 스스로 회의하던 명제가 현실 속에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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