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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샹젤리제를 꿈꾼다/도시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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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샹젤리제를 꿈꾼다/도시와 문화

입력
1996.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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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선 패션부티크와 화랑/분위기와 여유가 있는 카페들/X세대 압구정동과는 다른 중장년층 문화거리로 숨을 쉰다도시는 문화다. 문화가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이다. 도시는 문화의 색깔을 입을 때 빛을 발한다. 문화의 거리가, 예술인의 뒷골목이 있기에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도시는 호흡한다.

서울 강남구.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압구정동과 청담동이라는 문화가 있다. 길 하나 건너 다른 색깔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압구정동이 X세대의 자유분방함과 카페문화,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젊음의 해방구라면, 청담동은 여유와 분위기가 느껴지는 중장년층의 문화공간이다.

세모의 청담동은 서울의 샹젤리제를 꿈꾸고 있다. 화랑과 패션 부티크의 넓은 유리창에 보석처럼 영롱하게 반사되는 도시의 야경. 그 불빛을 받으며 그림 속의 인물과 마네킹은 꿈에 젖어있고, 현실의 사람들은 청담동을 지나며 꿈을 좇는다.

청담동은 그림과 패션이 있는 곳. 또 분위기와 문화적 자존심이 있는 동네이다.

청담동 문화는 80년대 말부터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패션과 그림 중 어느 것이 먼저인 지는 확실치 않다. 9년전 디자이너 박항치씨가 제일 먼저 정착하면서 이곳을 패션거리로 만들자는 생각이 디자이너들 사이에 퍼졌다. 물론 주변의 소비층이 두텁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청담동이라는 지명 자체는 각각의 브랜드를 능가하는 고급패션의 대명사가 되었다. 청담동이라는 세글자가 고유의 브랜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진태옥, 오은환, 루비나, 설윤형, 하용수…. 국내의 쟁쟁한 디자이너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다.

길건너 로데오패션이 첨단유행 중심의 실험적 패션이라면, 청담동 패션은 디자이너들의 손과 가위에 의한 작품이다.

화랑가의 대명사는 이제 인사동에서 청담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인사동에 분점을 가지고 있는 화랑도 있다. 박영덕 박여숙 미호 조선 서림 갤러리포커스 이목 가산 청 서미….

인사동이 보는 전시회라면 청담동은 파는 전시회이다. 판화와 장식성이 강한 소품들이 많다. 화랑 건물 자체도 하나의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젊은 작가들의 실험정신을 선뜻 수용하는 곳도 청담동이다. 웬만큼 여유있는 가정마다 그림 한 점이 필수 인테리어로 자리잡고, 미술 애호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이 청담동을 화랑거리로 만들었다.

청담동의 카페들은 분위기 값을 더 내야 한다. 로데오의 카페가 신세대들이 젊음을 발산하는 곳이라면 청담동의 카페는 20대 후반을 넘은 직장인들이 퇴근길의 여유와 분위기를 즐기는 곳이다. 서울의 다른 어느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느린 템포…. 적당한 여유에는 독특한 이끌림이 있다.

카페들은 뒷골목에 많이 몰려 있다. 낮에 작업장에서 일한 예술인, 문화인들은 밤에 뒷골목에서 만난다. 무엇보다 사람이 적어 조용하게 한 잔 할 수 있어 좋다. 「Simply the Best」(02-518-5737)는 인심 좋은 여주인에 손님과 주인이 따로 없어 단골손님들이 많고, 「터번스 홀리데이」(02-542-8272)는 혼자서 맥주나 양주를 한 잔 하고 퇴근하기에 딱 좋은 웨스턴 바이다. 이밖에 원목으로 1, 2층을 장식한 「웨스트고스트」, 벽난로가 멋있는 「리브고쉬」 등도 청담동 분위기를 돋군다.

청담동이라는 이름이 갖고있는 프리미엄. 지금 청담동은 그것을 지키고 한 편으로는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담동의 문화인들은 보다 대중에 가까이 가기 위한, 누가 와서 보아도 부담이 없는 문화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97년부터 청담미술제와 거리패션쇼를 개최하기로 한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이다.

◎화려한 야경이 있어 더 좋다/600m거리 가로수 장식한 연말연시 트리 불빛에 쇼윈도속 옷은 보석을 박은듯

샹젤리제의 밤이 떠오른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부티크, 미술관, 카페 사이로 개선문을 향해 가로수가 불빛 사열을 하는 샹젤리제. 청담로가 그렇다. 길가로 줄 지은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가게와 화랑 등을 가로수 152그루가 비추고 있다.

청담로터리에서 청담성당까지 600m거리의 「청담동 샹젤리제」. 청담동 디자이너들, LG패션, 화랑 등이 힘을 합쳐 꾸몄다.

세모가 다가오면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다. 7,000만원 예산이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패션과 화랑의 거리답게 보는 아름다움을 위해 투자했다.

장식된 가로수 자체도 보기 좋지만 매장 유리창에 비친 불빛은 더욱 아름답다. 불빛이 투영된 매장 유리 너머로 보이는 옷은 보석을 박은 듯하다.

가로수는 새벽 3시까지 불을 밝히지만 가게들은 하오 8시부터 문을 닫는다. 차안에서의 청담로는 정겨운데 인도에서의 청담로가 쓸쓸히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까.

그래서 청담로를 걷지 않아도, 바라보기 위해 차를 몰고 이곳을 일부러 경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모의 휘황한 장식 속에서 한 해를 보내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들이다.

『내년에는 가로수를 느티나무로 바꿀 생각입니다. 패션쇼에 사용한 의상 소품 등으로 바자회를 개최하고 거리패션쇼도 해볼 작정입니다』

패션 디자이너 설윤형씨의 말이다. 7년전 이 곳으로 부티크를 옮기면서 시작된 그의 청담동 사랑은 청담동을 문화의 거리로 만드는데 한 몫을 했다.

『강남은 너무나 메말라 있습니다. 번듯한 문화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남은 문화를 수용할 여유는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청담로의 야경을 꾸미는 사업을 주도했다. 디자이너 신상경씨와 함꼐 디자이너들과 화랑 주인들을 만나고 구청에도 뛰어 다녔다.

그는 청담동을 어떻게 만들고 싶을까. 『몽마르트르처럼 노상카페와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가 있고, 봄에는 꽃들이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이 거리에는 되도록 문화에 대한 긍지와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담동의 가로수는 97년 1월말까지 불을 밝힌다.<유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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