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한해 살림살이인 새해 예산안이 올해에도 법정 처리 시한(2일)을 넘기게 된 것은 여야 모두가 이를 정쟁의 논리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해묵은 악습의 재현이다. 국회 제도개선특위가 당초 합의시한으로 정했던 지난달 30일 정치쟁점사항에 대한 타결이 실패할 때부터 야당의 예산안 볼모 투쟁은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해마다 거의 빠짐없이 반복돼 온 예산안 볼모관행과 이를 빌미로 한 여당의 볼썽사나운 예산안 날치기처리는 작년 한해를 제외하고는 늘 있어 왔다.지난 1일부터 71조6,020억원의 새해 예산안은 계수조정작업에 들어갔고 야당은 이를 제도개선특위의 막바지 협상과 연계하기 위해 「완급」을 조정중에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바침하고 있다. 아직 정기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18일까지는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그때까지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면 별 문제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 여야 지도부에 원만한 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찾도록 정치력을 발휘해 줄 것을 당부한다. 왜냐하면 이번 예산안 지각사태에 대한 책임이 예산안을 볼모로 잡은 야당만을 탓할 수만은 없고 오히려 정치력을 발휘하는데 인색한 집권여당에 더 큰 책임이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도개선 특위에서 쟁점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는 검·경중립화와 방송법 등과 관련한 야당 주장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지금까지 검찰권의 행사가 때론 공정치 못한 구석이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석연치 않았던 점까지 있었던 데 대한 반작용이었음을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개선하려는 야당의 노력을 나름대로 일리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한 한계는 있어야 할 줄 안다. 야당이 내년 대선에다 모든 걸 걸고 과거처럼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투쟁 방식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유는 간명하다. 비록 명분있는 투쟁이라고는 하나 야당의 극한투쟁이 몰고온 결과는 항상 예산안의 경우, 「무수정 통과」 현실을 우리는 종종 보아 왔기 때문이다. 물론 날치기한 여당은 더 나쁠 수가 있다. 그러나 날치기 명분을 제공한 야당의 태도는 떳떳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제도개선을 이유로 접점없이 대치를 계속할 경우, 정부여당은 예산안의 회기내 처리를 빌미로 문민정부 초년의 경우처럼 날치기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럴 경우 국민살림살이는 또 한번 「심의없는 예산」이 되고 만다. 이 경우 날치기한 여당만이 아니라 이같은 상황을 낳게 한 야당에도 똑같은 지탄의 소리가 돌아갈 것이다.
제도개선특위의 활동시한은 내년 2월까지로 되어 있다. 우리는 국민의 세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예산안은 예산안대로 엄격히 심의 처리하고 난 연후에 제도개선 쟁점사항을 다룰 것을 다시 한번 권한다. 만약 여당이 이를 「나 몰라라」 외면할 때는 내년 대선에서 엄중한 심판을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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