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힘겨루기 파행 거듭/검찰·방송 중립화싸고 평행선 대립/“장기화땐 서로 손해” 타협소지국회가 내년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인 2일을 그대로 넘겼다. 이로써 국회는 87년 이후 10년동안 5번이나 예산안의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국회는 그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지만 『법을 만드는 대표기관이 법을 어겼다』는 비판은 면할 길이 없게 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정시한이 헌법상 훈시규정으로 이를 지키지 못한다해도 내년도 예산집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변한다. 사실 정부의 사전준비가 촉박해지는 부작용이 있을 뿐, 임시국회 회기중에만 예산안이 처리되면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입법부라는 원론에 비추어 보면, 법정시한을 무시하는 행위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이자 정치권의 위상을 스스로 추락시키는 자해에 다름 아니다.
이 대목에서 국민들은 『정치권이 거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법정시한을 왜 넘겨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표면적 이유는 제도개선협상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본질은 내년 대선의 힘겨루기라는게 정치권의 상식이다.
외형상 야당은 검찰총장의 국회출석 등 5개항을 요구하고 있고 여당은 기초단체장 정당공천배제 등 3개항을 내놓고 있다. 이를 놓고 여야간 온갖 명분과 논리가 제기되고 절충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여야 정파의 복선이 깔려있어 합의가 난망한 실정이다. 야당은 대선때 검찰, 방송이 여당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일정한 통제력을 갖겠다는 생각이며 여당은 틈새를 허용치 않겠다는 완강한 자세다.
더욱이 여야 모두 국회파행, 예산안처리 지연이 상대방에 더 피해를 줄 것이라는 계산에 몰두하고 있다. 여당은 『갈수록 야당의 구태가 문제될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고, 야당은 『여당의 오만이 비난받을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처럼 여야가 강경자세로 일관, 당분간 접점모색은 어려워 보인다. 일부에서는 파행의 장기화, 준예산편성의 불가피성을 성급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야간 예산안 처리를 위한 타협의 가능성도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지도자들이 이미지 관리차원에서 파행의 장기화를 바라지 않고있다는 사실이 협상의 여지를 넓혀주고 있다.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가 『강행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든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가급적 실력저지를 하지 말라』고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게 그 예이다.
여야총무들도 이를 감안한듯 제도개선협상 시한을 잠정적으로 주말(7일)로 늦췄다. 또 신한국당은 「검찰총장의 퇴임후 2년동안 임명직 공직취임제한」, 「재야법조인 학계인사의 검찰위원회 포함」을 대안으로 내놓는 등 신축성을 보이고 있다. 야당도 지방의원의 정수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화답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국회출석, 방송위원의 야당몫 할애, 기초단체장 정당공천배제 등 여야가 집착하는 현안들에 대해서는 평행선이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어 향후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이영성 기자>이영성>
◎준예산이란/연내 처리안되면 전년기준 집행
새해 예산안 처리가 법정처리시한을 넘기게 되면 국정과 국민생활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헌법 제54조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국회가 정부 예산안을 의결토록 규정하고 있다.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가 회계연도이므로 매년 12월2일이 법정시한이다.
그러나 이 시한을 넘긴다 해서 예산안처리가 「실종」되는 것은 아니다. 법정시한을 준수하지 못한다해도 정기국회 회기내(12월18일)에만 처리하면 된다. 설령 이 기간을 넘긴다 해도 정기국회가 끝난뒤 아무때나 임시국회를 소집해 예산안을 처리하면 된다.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도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에는 준예산을 집행하면 된다. 전년도에 준해 불가결한 부문의 예산을 집행토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63년이후 실제로 집행된 경우는 없다. 예산안 처리가 법정시한을 넘길 경우 가장 애를 먹게 되는 쪽은 정부다. 국방비·일반경비·고정자본형성 등과 관련해 월별 세부내역을 짜는데 곤욕을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새해 예산집행 세부계획서를 작성하는데 큰 지장을 받게된다. 그러나 국민실생활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않는다.<홍희곤 기자>홍희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