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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이 바로 작품”/여성 행위예술가 3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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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이 바로 작품”/여성 행위예술가 3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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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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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향한 이유있는 몸짓/도발적 충격적 연출…/저항과 자유의 정신 분출/“너무 자극적” 비난도『전시장에서조차 대량 생산·소비 시대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퍼포먼스는 예술가가 관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유희적 몸짓이다』(안필연)

『퍼포먼스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저항의 방식과 내용을 개방하는 것이다』(이불)

『작품과 하나가 되는 작가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비디오테이프보다 라이브가 더 매력이 있듯이 퍼포먼스의 매력도 그런 것이다』(이윰)

자신의 신체를 예술의 표현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들. 올 유난히 침체된 화단에서 여성 퍼포머(Perfomer)들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들은 우리 미술계의 총아인가, 이단아인가, 아니면 이들의 작업은 해프닝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가.

안필연(36), 이불(32), 이윰(25).

요즘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 여성 행위예술가들은 모두 홍대 조소과 출신으로 설치 작업과 퍼포먼스를 병행하고 있다. 조각을 하다 설치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기울어졌고, 난해한 설치의 「해석」을 위해 퍼포먼스가 필요했는 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퍼포먼스는 분명 이들 작업에 있어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았다.

지난 90년 첫 전시를 가진 안필연씨는 93년 「거울 속으로의 여행」전에서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내는 행위를 선보였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꿈에 소스라쳐 잠이 깬 바로 그날 새벽, 시아버지가 임종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고 그것을 행위로 표현한 것이다.

94년 「도박」전에서는 무당에게서 배운 사성 소리로 여성의 이름을 몇시간이나 불러댔다. 「필남이」 「섭섭이」 등 아들을 기원하는 여성의 이름 40가지에 우리나라의 500성을 붙여 만든 2만개의 이름이다.

지난 10월 시드니의 진 셔먼갤러리에서 마련된 「엿보기전」에서는 수백개의 형광색 가위를 달아 맸다. 가위날에는 지퍼를 달아 가위가 지나간 자리는 잘려지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도록 고안했다. 가위 몸체에는 눈을 붙였다.

『가위는 평면체를 잘라 입체물로 만들고 아기의 탯줄을 잘라 생명의 탄생을 돕기도 하며 때로는 나쁜 종양을 잘라내기도 하는 창조적 행위의 도구』이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 가위를 「거세의 은밀한 위협」으로도 생각한다.

안씨의 무대는 때로는 무용 공연장으로 넓어진다. 지난 여름 죽산예술제에서는 가위 솟대를 높이 올려 이 지역을 일종의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선언했다.사람들에게는 소원을 담은 바가지를 스스로 밟아 깨도록 했다. 그는 무용공연장의 「무당」이었다.

이 불씨의 퍼포먼스는 즐기기에는 부담스럽다. 한국작가로는 최초로 내년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초대전을 갖는 이씨는 작품 발표때마다 찬사와 조소를 동시에 받아왔다. 91년 그룹전 「혼돈의 숲에서」전에서는 화려한 구슬로 장식한 날생선을 며칠간 방치했다. 그것이 썩어 물이 흐르고 냄새가 나게 해 관객들의 눈과 코에 충격을 주었다.

자신이 나체로 매달려서 보는 이들까지 고통을 느끼게 한 「낙태」(89년), 웨딩드레스를 입고 방독면을 쓴 여성을 내세워 관습을 비웃은 「ARTOILET」(90년), 역시 반나체로 쇠사슬에 매달려 자신의 고통을 관객들에게까지 전이시킨 「여성, 다름과 힘」(94년) 등으로 이어졌다. 이씨의 퍼포먼스는 그로테스크와 충격의 연쇄작용이다.

올초부터 X세대 미술인의 표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 윰씨. 그의 철학은 『꿈을 현실로 만든다』(그의 말을 빌면 「Making a dream come true」이다)

기획자이기도 한 그는 『한국작가들이 너무 기획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 손꼽히는 참신한 전시의 하나인 「TV전」을 기획했고, 오는 8일까지는 「이윰 콜렉션」전을 갖는다. 동판이나 납을 이어 붙인 드레스, 아크릴판을 구부려 만든 치마, 손가락과 발가락에 끼우는 기묘한 장치 등 개념을 파괴한 의상을 선보인다.

이윰씨에게는 퍼포먼스도 다양한 실험적 양식중의 하나다. 지난해 10월 설치와 동시에 선보인 퍼포먼스 「빨간 블라우스」. 잃어버린 꿈들이 모여있는 「붉은 나라」에서 온 「빨간 블라우스」라는 소녀가 들려주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작가의 말처럼 퍼포먼스서 사용한 빨간색 아크릴은 산뜻하지만 생경한 것이 요즘 젊은이의 정서와 닮았다.

하지만 이들을 보는 미술대중의 시각은 그리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이들의 작업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여성 퍼포먼스가 지나치게 「육체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메시지야 어떻든 간에 「벗은 여성」은 비난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안필연은 지나치게 샤머니즘에 빠져 어디엔가 기대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에 영합하고 있다』 『이불의 페미니스트적 주장은 형식의 그로테스크함에 억눌려 오히려 관객들을 소외시킨다』 『이윰의 작품은 단편적이고 감각적이며 소재중심적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작가들은 한결같이 무신경한 반응이다.

『대중들 전부가 지지하는 예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오브제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제작한 소품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이윰, 활시위를 떠나기 직전 최고로 긴장된 화살처럼 아이덴티티의 답변을 찾아가는 이불, 『이 시대의 예술가는 정신과 의사처럼 대중을 느긋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안필연씨.

이들의 작업과 가치를 대중과 미술계가 모두 평가하고 수용할 수 있는 시점은 아직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은 지표를 상실한 세기말 한국 미술계에서 뚜렷한 한 경향임에는 틀림없다.<박은주 기자>

◎퍼포먼스란 무엇인가/아방가르드에 뿌리둔 ‘행위예술’/80년대 본격 소개… 장르간 벽 파괴까지

81년 1월초 매서운 추위를 뚫고 일단의 젊은 예술인들이 경기도 가평군 대성리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언 땅을 파서 관을 묻고 거기에 거울을 놓았다. 관객들은 무덤에서 자기 얼굴을 보았다. 신문을 눈 위에 뿌리고 다시 쓸어내기도 했다. 이들의 「짓거리」 이름은 「겨울·대성리·31인전」.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실험적 행위예술」이라고 불렀지만 대다수 관객들에게는 『추운데 괜한 고생』으로 비쳐졌다.

「퍼포먼스(Performance)」.

한 미술전문서적의 정의에 따르면 「육체에 의해 실행되는 행위예술, 작가 자신에 의해서나 관객을 끌어들여 행동이나 행위에 의해 어떤 조형표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중문화 현실 속에서의 퍼포먼스는 아직까지는 생경한 느낌이다.

퍼포먼스는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 나타난 혁명적 예술경향이나 운동, 즉 「아방 가르드」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실을 혼돈이라고 규정,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실과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논리는 이후 표현주의, 입체파, 해프닝, 팝아트 등으로 수용의 형태를 바꾸어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60년대 해프닝, 70년대 이벤트를 거쳐 80년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발언 도구로서의 「육체」를 강조하는 퍼포먼스는 「서울 ’86 행위 설치미술제」 「86 여기는 한국전」 「80년대 서울퍼포먼스」서 「’89 청년작가전」으로 이어졌다.

윤진섭 이불 안치인 이두한 등이 국립현대미술관 창문에 달걀 세례를 퍼붓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해 파문을 일으켰다.

84년 「굿바이 미스터 오웰」, 86년 「바이바이 키플링」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는 지난해 9월 「로봇 퍼포먼스」까지 선보였다. 로봇이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내용이다. 미술과 음악, 미술과 무용 등 「크로스오버」 형식의 퍼포먼스는 장르간 벽을 허물고 있다.

「크로스오버」 퍼포먼스도 70년대부터 무용 퍼포먼스를 선보여온 홍신자씨를 필두로 해 상당히 발전됐다.

지난해 예술의 전당에서 보여준 「설치미술과 한국정신 그리고 남성 춤」전. 이건용(행위예술가), 박실(조각가·행위예술가), 컴아트그룹 등이 참가한 이 자리는 70년대부터 시도돼 온 장르를 허무는 퍼포먼스의 전형이었다. 내년 3월 황병기(국악연주가) 심철중(연극인) 오대연(연극인) 안필연씨가 한 무대에 서고, 이윰과 무용집단 「미지예」가 만나는 내년 2월의 퍼포먼스 공연 역시 퍼포먼스의 「크로스오버」시대를 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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