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우수와 상흔/소시민적 애환 어우러져/나의 문학에 대한 기대치와 한계치를 실감내가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소설집을 처음 접한 건 77년 가을이었다. 대학 1학년 때였고 수유리에서 자취를 하던 무렵이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은밀한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었다. 나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던 세 가지 공간이 자취를 하던 동네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들은 바로 문방구와 레코드방과 서점이었다.
문방구는 당시 내가 짝사랑하던 아가씨(아, 그 아가씨는 지금 어느 하늘 밑에 살고 있을까?)가 있던 공간이라서 연필, 칼, 지우개, 원고지 따위를 사러 코흘리개 초등학생처럼 수시로 들락거리곤 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의 즐거움은 부모님께서 하숙을 하라고 보내준 돈을 자취생활로 절약하여 마음에 찍어 두었던 것들을 사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레코드방과 서점을 들락거린 일들이었다. 그래, 얼마나 운치 있고 낭만적인 시절이었던가.
동네 서점에서 「서울 1964년 겨울」을 사 들던 늦은 오후, 그리고 그것을 손에 들고 설레는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골목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뿐만 아니라 자취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소설을 읽어나가다 우우, 하는 괴성을 내지르거나 벽에다 이마를 콩콩, 짓찧어대던 기억도 또한 어제의 일처럼 마냥 새롭다. 어쩌면 소설을 이리도 기막히게 쓸 수 있단 말이냐! 나는 감탄하고 또한 절망했다. 갓 스물의 문학지망생에게 문학에 대한 자기 기대치와 한계치를 가장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해 준 소설집, 그것이 바로 「서울 1964년 겨울」이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세월 저쪽의 수도 서울, 그리고 그곳에 몸담고 살던 소시민들의 초상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차가운 바람이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고 가는 밤, 카바이드 불빛 어른거리는 포장마차에서 두 명의 사내가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게 된다. 스물다섯 동갑나기인 안이라는 대학원생과 구청 병사계에 근무하는 나. 둘은 「꿈틀거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함께 술을 마신다. 1964년 겨울, 서울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은 곧 소시민적 욕망과 애환의 다른 표현이리라. 그들 사이에 30대 중반의 사내 하나가 끼어든다. 급성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대학병원에 팔아넘긴 돈으로 술을 사겠다는 서적 외판원. 술을 마시러 가는 길에 화재 현장을 발견하고 셋은 불구경을 시작한다. 거기서 서적 외판원은 아내의 시체를 팔아넘긴 돈을 불속에 던져버린다. 그날 밤, 셋은 함께 여관에서 밤을 보내지만 아침이 되었을 때 깨어난 사람은 두 사람뿐. 서적 외판원의 자살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 작품 속에는 소설의 단순 구조를 넘어서는 시대적 우수와 상흔, 그리고 소시민적 애환이 진하게 배어 있다. 서적 외판원이 자살한 아침, 대학원생이 주인공에게 건네는 질문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지나치게 일찍 눈을 떠야 했던 당시의 사회적 조로 징후를 선명하게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등단한 작가 김승옥은 3년 뒤인 65년에 바로 이 작품을 발표해 제10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진정한 한글 세대로 이전과 다른 문학적 개성을 탁월하게 발휘한 작가로, 「살아서 이미 고전을 만든 소설가」로 평가되었다. 새로운 감수성의 소설, 새로운 도시소설, 새로운 개인주의 소설의 가능성을 개진한 작가로 뚜렷하게 자리매김된 것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접할 수 있었던 행운은 이제 우리 세대의 문학적 부채가 되었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그려내야 할 또 다른 서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생명연습」에서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그것은 우리에게 일종의 「극기」를 요구하는 버거운 부채인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적 부채, 그리고 문학적 극기… 갈 길은 먼데 시대는 여전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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