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한 삶을 거쳐 피어난 완벽한 ‘프로의 목소리’바리톤 최현수씨(38·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영광은 악착같은 현실에서 솟아났다.
「완벽한 베르디 가수 한스 초이(Hans Choi)」라는 찬사를 국제 무대에서 획득한 것은 꼭 10년 전 베르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나서다. 베르디 콩쿠르 우승은 파바로티 국제 콩쿠르 대상(88년)과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1등(90년)이라는 잇단 낭보의 서곡이었다.
그가 거쳐낸 경쟁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에 들기 위해 그가 치러낸 경쟁률은 세계 도처에서 운집한 인재들과의, 격렬한 700대 1.
특히 타지 사람들한테는 유달리 텃세 심하다는 차이코프스키에서의 우승 소식을 접한 국내의 열띤 반응은 기억에 새롭다. 며칠 전부터 그 소식을 연일 문화면 머릿기사로 보도해온 각 언론사들은 그가 귀국할 때 공항에서 즉석 합동 기자회견을 펼쳤다.
그가 이룩한 스타덤의 광휘는 그러나 정상에 오르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신산들을 가리고야 만다.
연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공부를 위해 간 이탈리아 베르디 음악원은 고생의 시작. 성악 본고장을 호흡하자는 일념으로 건넌 바다. 등록금은 1년에 불과 1만5,000원 상당이었으나, 물가는 천정부지인 곳. 그 흔한 개인 레슨 한 번 받지 못 할 빈한한 생활은 어린 시절부터 낯을 터 왔던 터였지만, 차삯마저 떨어져 먼길도 마다 않고 걸어다녀야만 했던 빈털털이 이탈리아 유학 생활은 한술 더 떴다. 승객 없는 심야 지하철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것이 그 시절 터득한 연습 방식.
『지금껏 조역으로 선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그의 프로론. 『돈 없다, 연구실 없다는 소리는 말짱 흰소리』라는 두둑한 뱃심. 장학금만이 그의 돈줄이라면 돈줄이었다.
프로로 갈수록 솔직하고 자연스러워진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의 인생과 인격, 철학이 필경은 음악에 삼투된다. 89년 그같은 사실을 절감했다는 그는 이미 프로가 된 상태에서 차이코프스키를 획득한 것이다.
『프로는 상품』이라는 명제 하나로 그는 클래식계의 화려하면서도 냉엄한 현실을 일도양단한다. 그같은 투철한 프로론은 곧 클래식이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스타」로 살아남기 위한 최현수식 해법이다.
그의 삶은 왜 치열했나.
단칸방 생활, 5녀 1남의 막내. 가난은 사람을 일찍 철들게 한다. 목청 좋던 그에게 성악이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사람을 은근히 긴장시키는 오페라에서 해방 돼, 이제 뮤지컬곡도 슬슬 할 계획이다.<장병욱 기자>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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