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YSDJ ‘전부와 전무의 공방’/97년 DJJP ‘공멸인식 권력 분점’또다시 실패의 전철을 밟을까.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까.
87년 13대 대선에서 민주당 김영삼 후보와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단일화에 실패해 고배를 마신지 10년. 97년 15대 대선고지를 향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또다시 후보단일화를 시도하고 있다.
외견상 현재의 후보단일화 논의는 87년 당시와 닮은 꼴이다. 6·29선언직후인 87년 7월1일 두 김씨는 「표대결 없는 후보단일화」을 약속하고 9월말 시한을 정했다. 그러나 바로 그뒤부터 독자적인 세각축이 시작됐고 결국은 단일화는 물건너 갔다. 지금 두 김총재가 후보단일화를 선언한 상태에서 제갈 길의 대권행보를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당시 김영삼 후보측이 주장했던 「DJ불가론」의 논리도 자민련측에 의해 되풀이 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87년 9월29일의 두 김 회동에서 김영삼 총재측은 김대중 고문이 출마할 경우 △군부, 중산층, 영남권이 중심이 된 비토세력이 있으며 △영호남 지역 대결이 굳어질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양보를 종용했다. 「DJ의 고정표는 YS를 찍지만 역은 불가능하다」는 당시의 주장이 현재 「파워JP플랜」의 요체이기도 하다.
이같은 비교에 대해 두 김총재측은 정면으로 이론을 제기한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87년 단일화 논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권력분점』이라고 말했다.
대권과 당권 분리를 조건으로 한 87년 단일화 협상이 사실상의 「전부 또는 전무」공방이었던 데 비해 이번은 「누가 더 많이 갖느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당시와 비교해 상황인식의 변화를 지적하는 주장도 있다. 당시에는 김대중 후보측에서 「4자 필승론」이 제기될 만큼 장밋빛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15대에서는 「동시출마는 필패」가 진리처럼 돼있다는 것이다.<유승우 기자>유승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