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특히 시가 위기다』라는 말들이 많다. 늘상 있어오던 말 같기도 하고, 특히 현 상황이 그렇다고 맞장구치고 싶기도 하지만, 자칫 함부로 그러기도 뭣한 것이 이런 류의 논의다.그러던 차에 월간 「문학사상」 12월호가 현재 우리 시단의 「정신주의」 대 「해체주의」 논쟁을 특집으로 실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당초 논쟁은 문학평론가 최동호 고려대 교수가 문학사상 10월호 시 월평에서 시인 이승훈 한양대 교수의 시와 산문을 『시단의 중진이 시쓰기의 혼란을 야기시켜서야 되겠는가』는 요지로 비판하자, 이교수가 11월호에 반론을 제기해 촉발된 것. 이에 대해 이성선 시인과 박상배 시인이 각각 양측의 입장을 옹호하며 다시 거센 어투의 반론을 제기, 논쟁이 대리전 양상으로 확산되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성선씨는 「정신주의의 서정성과 우주적 생명관 확보」라는 글에서 『80년대까지 거만한 모더니즘의 지적 중압과 배타적 리얼리즘의 독존주의에 짓눌려 숨을 못쉬던 감정의 형태들이 갑자기 민주화를 맞아 해체, 중심의 부정, 욕망의 분출을 부르짖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로 인해 문학의 마당은 일대 교란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며 해체주의-포스트모더니즘적 시쓰기의 배경을 말했다. 그리고는 『시의 진정성 서정성은 짓눌리고, 고귀한 인간성 고양과 조화롭고 활기찬 문학풍토마저 해체의 위기에 이르게 됐다』고 개탄했다.
이씨는 이어 『황지우 조정권 황동규 김지하 정현종 최승호 등으로 이어져 온 정신주의 시는 서정성 회복과 생태학적 생명관, 자생적 시관 등의 면에서 오늘날 시의 당위』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박상배씨는 「‘시대의 문학’이란 유령과의 투쟁선언」에서 『90년대는 「적의 부재」, 「중심의 부재」 속에서 한국적인 자생의 허무주의가 팽배하게 되었고 이것이 서구의 해체주의와 꼭 맞아떨어져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관의 수용에도 이르게 되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예술 자체에 대한 자의식의 과잉으로 비평의식이 더욱 요청되고 여기서 메타시가 배태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말한다. 메타시란 시적 대상을 현실에 두지 않고 시, 시인, 글쓰기, 언어, 영상매체, 독자 등에 두는 자기회귀적 방법의 시다(이승훈 교수).
박씨는 『요즘의 우리 시, 그 중에서도 이른바 생태·정신주의 시들은 그야말로 잔잔한 전통미학에 되돌아가 대개는 힘이 없고 긴장미를 잃고 있다』며 『정신사적으로 보아 금세기의 시대정신(시정신)은 시적 주체로 하여금 그와 같이 한가하고 편안하고 안일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정신주의측을 비판한다.
양측의 공방이 어떻게 계속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번 논쟁은 90년대 중반을 넘어선 우리 문단에 어떻든 큰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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