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냐 국제수지방어냐 ‘기로’/성장희생땐 실업률 늘어 대선 앞둔 정부 선택 관심한국은행은 29일 「현행 경제운용기조가 유지될 경우」를 전제, 내년도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6.4%, 경상수지적자는 180억달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7%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한마디로 「특단의 조치」가 없는한 성장 국제수지 물가 등 경제지표가 동시에 악화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다. 특히 한은의 「경상수지적자 180억달러」전망은 우리 경제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최대 경제현안인 경상수지적자 급증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한은은 김영삼 대통령이 최근 「주문」한 경상수지적자 대폭 축소를 위해서는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현행 경제운용기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내년도 GDP성장률을 7.0%로 유지할 경우 경상수지적자규모는 195억달러(소비자물가상승률 5.2%)에 달하겠지만 성장률을 6.0%로 낮출 경우 경상수지적자는 150억달러(4.5%)로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성장률을 5.5%로 낮출 경우엔 경상수지적자가 130억달러(4.2%)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이 정책모델을 통해 경상수지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장을 다소 희생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강남 한은조사1부장은 『내년 경제상황에 비추어 경제정책도 안정화노력의 강화를 통해 국제수지를 방어하고 물가안정기반을 다져나가는데 역점을 둬야한다』며 『어느정도의 성장둔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의 「안정적인 경제운용」은 곧 정부의 재정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시중통화량을 억제하는 총수요관리를 의미한다. 통화량의 고삐를 조일 경우 기업들은 지금보다 돈구하기 힘들어져 투자와 생산을 줄일 수 밖에 없고 개인들도 허리띠를 졸라맬 수 밖에 없다. 이에따라 기업과 개인소비가 줄어들고 수입도 줄어 경상수지적자가 감소하고 물가도 안정된다는 것이다.
이부장은 또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고비용·저효율구조도 궁극적으로 물가상승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저성장 저물가 국제수지방어」정책은 개발독재시절이후 줄곧 우리 경제정책의 근간이 돼온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상당히 파격적인 대안이다. 더이상 개도국시절에 통했던 「값싼 상품의 밀어내기 수출」에만 의존해서는 「저성장·국제수지위기」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란 진단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과연 성장을 희생하고 국제수지방어와 물가안정에 무게를 싣는 정책을 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성장희생정책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성장 저하는 곧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률이 상승하고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역대 정부가 고도성장을 자제하고 내실을 다지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은이 제시한 모델에도 내년 성장률이 7%일 경우 실업률이 2.0%이지만, 성장률을 5.5%로 낮출 경우 실업률은 2.6%로 늘어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은이 내년 성장률을 6.4%로 전망해놓고 있는 이유도 정부가 성장률을 5.5%로 과감히 낮추기 힘들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성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경상수지적자 축소에 적극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유승호 기자>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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