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유명 미대 다툼에 다른 줄 잡으면 평생 ‘찬밥’/심사위원따라 공모전 싹쓸이도/무용계도 철저한 도제교육/홍보·비평까지 ‘밀고 끌고’현재 미술계 초미의 관심사는 내년에 신설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원장 오경환)의 교수선임 문제다. 미대 사상 최대규모인 23명의 신임교수 인선과 관련, 벌써부터 출신대학별 인적구성 비율을 점치는 사람이 많다.
서울대 미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교수선임권을 갖고 있는 원장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고려한 결과이다. 미대의 경우 학장이나 원로교수의 출신대학에 따라 교수들의 줄서기가 행해져 온 관행에 근거한 이런 추측은 거의 정설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특히 인선 결정일이 다가오면서 서울대 출신이 아닌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80% 이상이 서울대 출신일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과 함께 홍익대 출신은 철저히 배제될 것이라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오원장은 『학연에 따른 파벌싸움이 지금까지 미술계 발전을 저해해 왔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며 『각 분야에서 가장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다는 원칙에 바탕해 인선을 하고 있으니 깜짝놀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젊은 미술가 사이에는 작품활동을 하든 교직에 남아 있든 줄을 서지 못하면 평생 「찬밥」이라는 피해의식이 팽배해 있다. 서울대나 홍익대 출신이 아니고는 어디서든 살아 남기가 어렵다는 경험이 누적된 결과이다.
명문대 출신중에서도 스승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학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 미국 유학준비를 하고 있는 홍익대 출신 L씨는 『젊은 화가들조차 입김이 센 서양화의 P·C·K 교수, 동양화의 K·H 교수 등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교직은 물론 작품비평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 눈밖에 나면 큰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과 4개부문별 우수상 수상자 등 5명의 출신대학을 살펴보면 젊은 예술가들의 푸념이 현실로 다가 온다. 올 봄 비구상계열 수상자는 홍익대 출신 4명, 서울대 출신 1명이었고 이달 발표된 구상계열 수상자는 홍익대 출신 4명에 지방대 출신 1명이었다. 이런 결과가 출신대학에 따른 현격한 재능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미술인은 그리 많지 않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9명이 92년부터 올해까지 연쇄적으로 사표를 제출한 것도 학맥 다툼과 무관치 않다. 서울대 출신 관장의 운영방향에 불만을 가진 홍익대 출신 큐레이터들의 집단적인 항의표시 성격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용계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창작활동과 교육이 분리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가장 활발한 무대활동을 하는 무용가는 대부분 교수들이다. 대학 방학기간에 국내외 공연이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용계가 대학교수 위주로 움직이면서 학맥과 인맥의 폐해가 뒤따르고 있다.
무용과 교수와 학생은 「도제식 예술교육」으로 서로 묶여 있다. 이같은 공생관계가 부조리의 토양이 된다. 무용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3, 4학년때부터 무용과 교수가 운영하는 개인스튜디오에서 배우기 시작하고 이 인연은 평생 이어진다. 대학교수 1명이 바뀌면 입시생들을 대상으로 한 레슨강사들도 전원 갈리는 것이 무용계의 불문율이다. 교수의 스타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입학이 힘들다는 생각에 학부모들은 너도 나도 해당교수의 제자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게 마련이다. 레슨강사들도 교수와의 인연을 당당하게 과시하며 고액레슨을 한다.
교수들의 자기 제자 챙기기는 홍보와 「좋은 비평」에까지 끊임없이 계속된다. 교수는 끌고 제자는 밀며 「출신 성분」이 다른 틈입자를 막는다. 자기 제자를 직접 키우겠다는 순수한 열의와 경쟁교수를 누르겠다는 생각이 뒤얽혀 다른 교수가 관계한 작품에는 아예 출연하지도 못하게 한다. 국내 대학 출신이 아닌 외국 유학파나 무용강습소 출신들과의 반목도 심하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선거가 다가오면 양측의 대립이 극에 달한다.
무용평론가 문애령씨는 『소수의 교수들이 교직추천과 무대활동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자리다툼이나 파벌만들기에 연연하지 않는 진정한 「예술인」이 아쉽다』고 말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예술계 대학생 칠거지악/명절때 교수찾지 않는 것/교수발표회 참석 않는 것/학부모 교수방문 않는 것/인사때 빈손으로 가는 것/교수말에 토를 다는 것/화풍·연주풍 거스르는 것/다른 교수 연주 참여하는 것
「명절때 교수를 찾지 않는 것, 교수의 발표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 학부모들이 교수집을 찾지 않는 것, 인사때 빈손으로 가는 것, 교수 말에 토를 달거나 반박하는 것, 교수의 화풍이나 연주풍을 거스르는 것, 다른 교수의 연주회나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
음·미대생과 무용과 학생들이 입에 올리는 「칠거지악」이다.
음·미대 학생은 교수와 도제관계를 맺고 있다. 예고때부터 지원대학 교수들에게 레슨을 받는다. 대학에 들어가면 레슨교수가 지도교수로 이름만 바뀐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화가가 되더라도 지도교수의 손바닥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부 교수는 학생을 종 부리듯 다루는가 하면 부당한 횡포를 일삼아도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이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는 「음·미대는 우리 학교가 아니고 교수들 학교」라는 자조적인 말도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고 불평 불만을 늘어 놓을 수도 없다. 서울대 음대의 한 학생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음악계는 한 통속이예요. 한 분야에 몇 안되는 사람끼리 얼키설키 얽혀 있기 때문에 교수에게 자칫 잘못 보였다간 큰 일입니다』
취재팀이 집단으로 만난 서울 모대학 음대생들의 입에서는 듣기 거북한 소리들이 마구 쏟아졌다. 『강사가 되는데 수천만원이 들어 간다』 『대입 실기시험 한번 치르면 집이 한채 늘어 나는 교수도 있다』 『교수가 독주회를 하면 학생들은 표사주는 기계가 된다』 『교수가 악기 구입을 중개하면 수백만원이 더 비싸도 사야 한다』
이들의 얘기는 말이 옮겨지면서 점점 부풀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음·미대생들 입에서 공통적으로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예술계 대학의 현실을 되짚어 볼 때가 됐다.<이진동 기자>이진동>
◎예능계 대학은 규수양성소/‘신부감 프리미엄’에 여대생 비율 압도적
『음·미대는 규수 양성소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음·미대 등 예술계 여대생들의 졸업후 진로는 이미 입학때부터 대부분「결혼」으로 정해져 있다고 단언한다. 재능이 특출한 소수 학생을 제외하고는 전공을 살리기 힘든 탓에 많은 여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결혼준비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음대와 미대의 여학생 비율은 압도적이다. 국내 4년제 음·미대 졸업생 1만여명 중 여학생이 약 70%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예술가로서 계속 활동하는 졸업생은 1%도 안된다. 전공관련 일자리를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문가들은 한정된 일자리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외국의 경우 기업체나 공공기관, 종교단체 등이 각종 예술단을 두고 있어 취업 문호가 넓은 반면 국내에는 몇몇 예술단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자리가 없는 실정이다. 미대의 경우 응용미술 분야를 제외하고는 운신폭이 더욱 좁아져 『모대학 앞 카페주인의 50%가 이 학교 미대출신』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이다.
또 음악치료사, 무대예술가, 예술이벤트사업 등 수많은 실용 직종이 있어 예술 전공자들의 사회진출이 쉬운 구미와 달리 국내에서는 직종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4년제 대학의 교육과정도 주로 순수예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실용예술 전문가 양성에도 어려움이 많다.
한국예술연구소 김춘미 소장은 예술가 지망생이 너무 많은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예술인력이 과잉상태여서 대학졸업 후 할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일찌감치 결혼해 집안에 들어앉는 여자 졸업생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부감으로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학부모들의 생각때문에 예술을 전공하는 여대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며 『딸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려야 집안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는 잘못된 생각과 맞물려 이런 현상은 거의 치유 불가능 수준에 이르러 있다』고 지적했다.
탁씨도 『화려함만을 보고 이면에 가려진 피나는 고생은 알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욕심이 수많은 고급 실업자를 만들어 낸다』며 『예술을 애호하는 것과 전공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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