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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없는 농촌/김귀영 풀무협동조합 간사(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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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없는 농촌/김귀영 풀무협동조합 간사(1000자 춘추)

입력
1996.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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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인 나는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시골외가에 다녀온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했다.개울가에서 미역 감고 가재 잡은 얘기나, 참외 수박 서리한 얘기, 매미랑 메뚜기 여치 호랑나비 따위를 수없이 잡아 곤충채집 숙제는 문제없다고 떠들거나,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풀잎들을 가리키며 이름을 척척 대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얘기를 들은 날은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우리 외가도 시골로 이사가게 해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라고 여겨졌었다.

그런 기억 때문이었는지 난 결국 농촌으로 시집와서 살게 되었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농촌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수준이 낮다거나, 문화적 혜택이 적다거나, 놀이시설의 부족 등이 아니라 같이 놀게 해줄 친구가 없다는 데 있다. 하루종일 할머니나 TV와 씨름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세살 때부터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이 많은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기교육이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또래 아이들과 놀게 해주기 위해서란다.

30년전쯤 내 남편이 다니던 이곳 초등학교는 대개 70∼80명씩 5개반 정도로 구성되어 오전 오후반까지 있는 꽤 규모가 큰 학교였다는 데, 30년이 지난 지금 큰 딸이 입학할 때에는 37명 1개 학급밖에 만들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어도 친한 친구와 헤어지는 슬픔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설렘도 맛보지 못하고 늘 보던 아이들과 6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중학교에 진학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큰 딸이 엄마가 되어 있을 30년 후 쯤엔 과연 이 학교가 존재하기나 할지 모르겠다. 이미 몇년새 인근에 폐교가 된 학교도 여럿 있고 지금도 없어지고 있는 중일게다. 아이들은 미래의 지표이다. 농촌에서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농촌에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제는 농촌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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