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쪽끝은 아마도 태고적부터 시베리아 철새들의 겨울궁이었을 것이다. 산업문명이 들어오기전 낙동강 주변이나 광양만 일대에 살아본 사람이면 겨울밤 갈대밭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몽둥이를 휘둘러 몇마리의 기러기, 청둥오리같은 사냥수확물을 얻어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더러는 강가에 나무꼬챙이 낚시에 걸려 퍼덕거리는 북쪽 손님을 잡기도 했다. 겨울철새 천지였었다.개펄이 메워져 공단이 들어서고 강둑을 쌓아 늪지가 주택지로 변해가는 동안 겨울철새들중 아예 들어오지 않는 일이 많아지는가 하면 들어왔다가도 이내 가버리는 일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지고 있다. 경북 고령의 흑두루미 도래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등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28일자 한국일보 39면). 겨울 철새들이 몽둥이 사냥감에서 진귀한 겨울손님으로 변하다가 이제는 물질문명에 겨울궁을 앗겨 버린채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세계환경주의자들은 지금 유엔을 동원해 늪지(Wet Land)살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강줄기가 끝나거나 바닷물이 완만하게 들고나는 곳에 형성되는 이 늪지는 단순히 철새도래지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닌 지구를 살아움직이게 하는 심장의 박동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갖고 맹렬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늪지는 첫째 육지에서 흘러내리는 찌꺼기를 바다에 들어가기전 걸름질하는 지구의 콩팥 역할을 하고 둘째 바다의 물고기들이 산란해서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는 어머니 품이자 유치원 역할을 하며 셋째 철새와 물고기의 관계처럼 육지동물과 바다생물간의 조화를 이룩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늪지가 죽으면 육지의 오염물들이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다가 죽게 되고 바다의 고기들은 산란처와 요람을 잃어버리게 되어 결과적으로 철새도 없어지고 바닷고기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무서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흑두루미떼, 청둥오리떼, 붉은 부리갈매기떼를 한반도에서 날아가 버리게 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우리 생명의 지표들이다. 새로 제정될 습지보전법이 환경을 살리는 큰 발걸음이 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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