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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죽음을 보고/이병훈 전북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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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죽음을 보고/이병훈 전북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6.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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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존중의 철학정치를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은 환경문제다. 마음놓고 마실 물도, 슈퍼마켓의 식품도, 숨 쉴 공기도 아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각종 야생동물이 부쩍 수난을 겪고 있다. 뱀 새 개구리가 줄어든 것은 오래전 이야기이고 최근엔 지리산의 반달곰과 노루들이 밀렵꾼들에 의해 절멸위기에 놓여 있다. 그래서 반달곰 구출작전에 대통령이 특별지시까지 내리는 사상초유의 「환경정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나라경제나 야생동물 남획이 과연 감원이나 밀렵통제 같은 대증요법만으로 가능할까. 개발과 지역소득 증대라는 명목으로 골프장 콘도 휴양장 등이 자연파괴, 상수원 오염 등과 관계없이 마구 허가되었고 공장폐수와 목장 지분뇨의 방출이 우기와 야간을 틈타 자행되고 있다.

이 모두가 생명경시사상에 연결되어 있다. 만약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이렇게 돈벌이에만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무역량 세계 10위권이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했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은 하나의 자기기만이요 위선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생명존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총체적 부패의 「한국병」치료에 이제까지의 대증요법에서 심층적 원인요법으로의 패러다임 이동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나라가 절대 후진국에 속한다는 증거는 많다. 우리 자연에 관한 낮은 지식수준이 그렇고, 구체적으로는 한국산 생물이 몇종이나 알려져 있는지, 자연연구와 생명존중교육의 현장으로서의 자연사박물관이 얼마나 있는지 등의 문제이다.

한반도에 살았던 것으로 보고된 생물은 약 2만8,000종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의 추산으로는 실제 살고 있는 생물의 4분의 1도 안된다. 그만큼 연구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고된 2만8,000종의 증거표본은 상당수가 영·미·일 등에 가있고, 더욱이 북한산 표본은 100만점 이상이 헝가리 폴란드 등 동구권의 자연사박물관에 가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에선 말로만 금수강산을 찬양해 왔을 뿐 그 본산으로서의 국립자연사박물관조차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나라의 생물종에 대한 호적등기소가 없고, 중앙은행이 없으며, 국립도서관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먼지 앉은 죽은 표본이 그간의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앞으로는 DNA를 뽑아 새로운 품종과 의약품을 창출할 수 있는 후세의 「노다지」가 되고 있다. 과거 피지배국가에서 무수히 많은 생물표본을 수집해간 강대국들은 열대국가에 비해 생물종수가 형편없이 적으면서도 이미 갖고 있는 표본들로 인해 생물다양성 강대국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생물표본을 보전, 연구하는 자연사박물관의 나라별 통계를 보면 우리는 「0」으로 나와있다. 북한보다 뒤져 있고 세계에선 120위를 밑돈다. 북한엔 학술원 산하에 동물연구소와 식물연구소가 있어 생태계연구의 센터구실을 하나 남한엔 그런 것이 없다. 뒤늦게나마 정부는 작년 6월 국립자연사박물관 신설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일부 진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관부처인 문화체육부엔 1년이 넘도록 전담직원 하나 없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며 국민과 학계를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생명존중사상의 고양과 같이 장기적이고 심층적인 사업에 절대가치를 부여하여 사람과 야생생물의 삶을 존중하는 철학적인 문화정치를 이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얼마전 전철에서 책보기에 열중하는 한 어린이를 보았다. 그저 치고 받는 폭력만화겠거니 했다. 그러나 그것은 외계인 출현과 공룡의 생활 등을 다룬 과학만화였다. 우리의 미래와 나라 바로잡기의 가능성은 이 열살짜리 어린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서린 탐구심과 예민한 감수성에 두어야 할 것이다.<한국생물다양성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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