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잠실 등 5개 저밀도지구의 아파트를 25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재건축기준완화 방침을 발표한 뒤 이를 놓고 찬반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각종 도시병을 앓고 있는 강남지역에 일산신도시만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섬으로써 교통난 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반대론과 10평대의 허술한 연탄난방 아파트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주민들이 안락한 삶을 즐길 수 있게 재건축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찬성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서울시의 재건축기준 완화방침에 대한 양측 주장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찬성입장/곽영석 잠실지구 재건축단지 협의회장/택지개발 한계 정책전환 불가피/‘주거공간 확충’ 주민입장 살펴야 편집자>
재건축사업은 단순히 개인이 낡은 집을 헐고 새 집을 짓는다는 측면보다는 공공성과 도시의 균형적 발전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아울러 사업의 집단성과 불량주택 개량, 주택의 질향상과 부족한 공공시설의 확보 등 도시계획적 차원에서도 규제할 것이 아니라 민주도사업으로 적극 권장하고 각종규제를 풀어 도시공간 확충과 가중되는 대도시 택지난 완화를 위한 정책적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은 70년대 전후반에 준공 분양된 도시지역 저소득층 아파트로 거의 연탄온돌을 사용하고 있으며 연탄가스에 의한 수도와 가스관로의 부식과 벽체균열이 심해 관할구청이 전반적인 안전진단실시를 촉구하고 있는 아파트단지이다.
최근 서울시가 5개 저밀도아파트지구의 밀도변경 확정안을 발표하자 개발밀도 증가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외국건설사는 『수도 서울의 경우 이미 택지개발이 한계에 이르고 있으며 연차적 주택공급물량은 재개발 및 재건축을 통해 확보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재건축의 필요성은 주거공간의 확충에 있다. 저밀도지구 주민들은 대형아파트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교에 재학하는 자녀에게 방을 줄 수 있는 최소한 방 3개가 딸린 전용면적 25.7평 이상의 아파트를 갖고자 하는 것이다.
10월 건교부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개정도 바로 주민의 입장을 정부가 배려한 것이며 주민도 건축법에 명시된 용적률 상한치를 주장하거나 개발이익 극대화를 위한 과밀개발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주거공간의 확충과 학교 등 공공시설의 확보, 생활근린시설 확충 등 그동안 도시를 병들게 했던 각종 도시문제를 해소시켜 환경친화적이고 다원화한 도시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데 사업의 당위성이 있다.
재건축으로 교통난 집값상승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재건축 이후 저밀도아파트지구의 가구가 7만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로는 6만1,000∼6만2,000가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소형평수의 물량을 줄이고 중대형물량을 늘리면 전체 가구는 당초계산보다 적게 증가하는 데다 중대형 아파트가 몰려있는 일부지구의 단지는 재건축을 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있기 때문이다.
또 먼저 재건축하는 곳과 나중에 재건축하는 곳으로 나눠져 교통난 등 사회문제가 한꺼번에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전세수요도 우려만큼 많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현재 수도권에 공급되는 아파트물량을 감안하면 전셋값 폭등은 없을 것이다. 도시기반시설도 가구가 많이 늘지 않기 때문에 그리 우려할 이유는 없다.
◎반대입장/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외국선 강가에 고층아파트 없어/고밀화 ‘회색도시’ 더이상은 안돼
서울시의 「저밀도아파트지구 재건축종합대책」이 발표됐다. 이 대책의 골격은 지난해 9월에 잡혀 있던 것이다. 당초 계획은 용적률 270%, 아파트 평균높이 12층이 골자였다. 그러나 이 대책은 재건축의 중요한 동인인 증평효과, 즉 기존의 주택보다 더 넓은 집으로 재산가치의 상승을 기대하는 주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한 것도 사실이었다.
서울시와 재건축조합은 이 안을 놓고 오랜 논의와 협상을 전개해 왔고 14일 용적률을 285%까지, 최고 25층까지 지을 수 있게 하는 안에 합의했다. 서울시는 오랜 민원 하나를 해결하고 노후아파트지구를 정비하고 공공시설을 두루 갖춘 아파트단지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 안에 대해 일부 주민들이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서울시내 다른 아파트단지의 용적률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강남지역의 대표적인 아파트단지인 압구정동단지의 평균용적률은 200.7%이고 최근 사업이 완료된 분당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은 201.7%이다. 주택개량 재개발사업에 따라 서울시내 산등성이에 건설된 아파트들의 평균용적률이 281%이다.
그런데 이 합의가 발표된 이후 왜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것일까. 서울이라는 이미 고밀화한 지역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에 시민들이 요구하는 가치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합의로 68%에 불과한 주택부족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5개 저밀도 지구의 아파트를 재건축한다고 해서 주택난이 해소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주택부족난이 완화된다고 해도 왜 반포 잠실처럼 중요한 지역을 고층아파트 밀집지역으로 개발해 한강이라는 천혜를 희생해야 하는가.
주택부족난이 우리보다 심한 파리의 센강가에는 고층아파트단지가 없다. 서울시는 앞으로 단지배치 등에 따라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시환경이나 주거환경의 질은 기본적으로 밀도, 즉 용적률에 의해 결정된다.
서울시의 보완대책은 실효성이 매우 제한돼 있다. 이번 협의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집단화한 주민들의 요구에 직면한 도시관리주체의 한계를 생각할 때 용적률이 현재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20세기 마지막 10년의 절반을 넘긴 오늘에 10평규모의 연탄난방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재건축대상지역 주민들의 피곤함과 함께 공해로 찌든 서울하늘 아래 회색의 거대한 건물이 늘어선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때마침 「회색도시의 기억들」이 대한민국미술전의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20세기가 아닌 21세기에도 「회색도시」를 「기억」이 아닌 「현실」로 안고 가야 하는가. 이것은 너와 내가 아닌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서울 5개 저밀도아파트지구에 5만여가구/93년 시의회서 주민청원 채택하면서 논란
서울시가 14일 잠실 등 서울시내 5개 저밀도아파트지구의 재건축 용적률을 285%로 완화한 뒤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단위 재건축이 이뤄짐으로써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및 전셋값 상승, 상하수도 가스공급시설 등 도시기반시설의 부족, 교통체증, 경관침해 등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게 이번 결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이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강남지역 저층아파트 값이 크게 뛰고 있다. 더구나 서울시의 도시계획변경이 있어야만 재건축이 가능한 택지개발지구 아파트와 심지어 10층이상 고층아파트도 재건축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큰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반해 해당 지역주민들은 다른 지역에서 이미 용적률 300% 이상으로 재건축했거나 재건축중인 마당에 용적률 285%를 과밀개발이라고 문제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와 저밀도아파트지구 주민들이 오랜 실랑이 끝에 어렵게 합의한 재건축기준이 사회적으로 큰 불씨를 던진 셈이다.
서울시내에는 현재 잠실, 암사·명일, 청담·도곡, 반포, 화곡 등 5개의 저밀도아파트지구가 있다. 이곳에는 지은 지 20년전후의 5층짜리 아파트 5만1,259가구가 있다. 용적률도 80∼110%에 불과하다.
저밀도아파트지구의 재건축문제는 93년 9월 서울시의회가 이를 주민청원으로 채택하면서 표면화했다. 이후 주민들은 재건축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계속 협의해 왔다. 주민들은 용적률 330∼400%, 층고 20∼30층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용적률 270%, 층고는 평균12층이 돼야 한다는 안을 제시, 주민들과 팽팽하게 대립했다. 그 뒤 도로와 공원 등 아파트단지의 공공용지를 주민들이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용적률을 285%로 늘려주고 층수도 서울시 경관심의기준에 따라 최고 25층까지 지을 수 있게 했다.
서울시는 재건축이 이뤄지면 5개 저밀도아파트지구의 가구는 7만여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거주자가 늘어나면 도로 등 각종 공공시설을 크게 확충해야 한다. 만약 필요량만큼 확보되지 않으면 인근 주민들까지 커다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재건축기준이 발표된 뒤 이같은 문제가 지적되자 서울시는 급히 보완대책을 만들었다. 1년에 재건축할 수 있는 아파트를 1만가구 정도로 제한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사업성이 떨어지고 사업기간이 길어져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박광희 기자>박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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