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부터 사흘간 김영삼 대통령은 베트남을 공식방문 했었다. 우리에게 베트남은 아직도 「월남」이라는 표현과 함께 남다른 기억이 남아있는 나라여서 베트남 통일후 처음 이루어진 국빈방문도 여러가지 면에서 관심거리였다.그런데 김대통령의 이번 방문에는 국빈방문의 관행적인 절차가 하나 생략됐다. 통상 국가원수가 외국을 방문하면 그 나라의 「국립묘지」에 참배하게 마련인데 베트남 방문에서는 그게 빠졌다. 베트남을 방문했던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호치민의 묘소나 무명용사의 탑을 찾지않은 것이다. 물론 지난해 4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도 무오이 공산당서기장도 우리 국립묘지에 헌화하지 않았다. 서로가 총부리를 겨누었던, 오래되지않은 과거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베트남측은 정상회담을 비롯한 각종 공식·비공식 모임에서 「월남전」 얘기는 한마디도 비치지않았다. 온통 『불과 30년만에 경제기적을 이룬 한국을 배워야겠다』는 말뿐이었다. 그렇다고 베트남인들이 민족적 자존심이 없는게 절대 아니라고 한다. 『침략을 당한 쪽은 우리이니, 우리가 아무 말 하지않고 있으면 되는 것』이라며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급한 일은 경제개발을 이루는 것이지 실속없는 감정풀이가 아니라는 식이다.
실제로 베트남은 지난 92년 우리나라와 수교하기까지의 협상과정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수교를 서두르는 베트남을 보고 오히려 우리측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괜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념적 해석을 잠시 접어두면 우리나라 군인이 베트남에 가서 전쟁을 한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과 수교협상을 벌였을때 6·25전쟁 문제를 거론했었던 것에 비하면 베트남인들의 자세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아직 변변한 건물조차 별로없는 수도 하노이의 낙후된 모습과는 다르게 베트남인의 자존심은 커보였다. 혹시 우리는 작은 자존심때문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하는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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