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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이 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다시읽는한국문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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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이 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다시읽는한국문학:3)

입력
1996.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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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노동에 대한 공감 등/단순한 정서적 반응 넘어 ‘인간의 길’과 통하는 노동소설로 이해됐을때 문학의 길잡이로 다가와이 글을 쓰려고 책장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뽑아내는 마음이 잠시 우울해진다. 70년대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현실이었다. 산업사회로의 급진적 이동이 불러일으킨 노동력 착취에 근로자들의 인간적 생활이 차단되었던 때, 나는 고등학교 일학년이었고 은사로부터 「난장이가…」를 건네받았었다.

누가 읽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 책을 금서처럼 품고 다녔다. 책 표지를 하고 다시 비닐로 싸 가지고 다니면서 속이 상할 때마다 펼쳐보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열 여섯이었던 때에 무슨 뜻인지나 알고 읽었겠는가.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기에 반복해서 자꾸만 읽었고(신뢰하는 은사가 준 책이니) 그래도 모르겠기에 노트에 옮겨적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당시 난장이 가족에게 정서적 반응을 일으켰다. 책 속의 사건에 정서적 반응을 보였다는 건 그들이 겪고 있는 사실이 나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난장이의 딸 영희가 졸음과 싸워가며 노동을 하는 장면은 이렇게 묘사된다. 『영희는 졸음을 못참고 눈을 감았다. 두 눈을 감은채 직기 사이를 뒷걸음쳐 걷고 있었다. 그 밤 작업장 실내 온도는 섭씨 삼십구도였다. 은강방직의 기계들은 쉬지 않고 돌았다. 영희의 푸른 작업복은 땀에 젖었다. 영희가 조는 동안 몇 개의 틀이 서 버렸다. 반장이 영희 옆으로 가 팔을 쿡 찔렀다. 영희는 정신을 차리고 죽은 틀을 살렸다. 영희의 작업복 팔 부분에 한점 빨간 피가 내배었다』 이때쯤이면 나는 어김없이 영희의 아픔이 전이되어 얼른 내 팔을 보게 되곤 했다. 영희가 큰오빠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들을 다 죽여버려』라고 말했을 때 그 말 또한 내가 한 것 같았다.

난장이 가족이 내게 정서적 반응을 넘어서서 문학 텍스트로 다가온건 대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때는 『나는 은강에서 일하는 살아가는 사람들을 머릿속부터 변혁시키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 나는 그들이 살아가는 사람이 갖는 기쁨, 평화, 공명, 행복에 대한 욕망들을 갖기를 바랐다. 나는 그들이 위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라는 대목이 순식간에 이해가 되었고, 가슴이 아팠으며,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문학의 힘이 밀려왔다.

왜소하고 병신스런 난장이 일가는 가난한 소외계층과 공장 근로자의 핍박한 현실만을 말하고 있는게 아니다.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삶이 주는 공포를 어느 누구인들 공감하지 않겠는가. 70년대 산업사회의 노동현실만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었다면, 혹은 난장이 일가에 개인의 역사만 담겨져 있었다면 「난장이가…」는 이미 텍스트로서 효과는 잃지 않았을까. 「난장이가…」는 노동소설이지만 모든 인간의 길과 통하는 노동소설이다. 개인과 사회, 형식과 내용, 비현실과 현실이 내적 감수성과 사회적 실감 아래 미적으로 펼쳐진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궁핍한 심리변동이 시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미감 때문이리라. 착취당하는 삶의 여러 각도를 조명하는데 사용되는 객관적이고 짧고 명료한 단문은 환상과 귀기와 참혹한 서정을 끌고 다니면서, 수많은 의미가 무화되고 있는 이 90년대 한복판에서도 오롯하게 빛을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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